스킵네비게이션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빠른예매 바로가기 사이트 지도 바로가기
월간미르 상세

2018년 04월호 Vol.339

두려움에 떠는 몸, 그리고 그 배후

세계무대┃다이라쿠다칸 부토컴퍼니 '죄와 벌' 관람기

 

 

도쿄 신국립극장 개관 20주년 기념 댄스 공연, 다이라쿠다칸(大駱駝艦)의 ‘죄와 벌’이 지난 3월 17일~18일 신국립극장 중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퍼포먼스를 마친 댄서들이 흩어져 있는 무대 위, 장중하고 선 굵은 피날레 음악이 울려 퍼진다. 컴퍼니의 수장 마로 아카지(


부토의 시초로 언급되는 히지카타 다쓰미(土方巽 1928~1986)의 ‘암흑부토(暗黑舞踏)’는 금기·죽음·망령·에로스 등의 키워드를 가지고 있었다. 1972년에 마로 아카지를 중심으로 결성된 부토 컴퍼니 다이라쿠다칸은 ‘부토BUTOH대전’의 설명을 빌리자면, 암흑부토의 계보를 잇고 있으면서도 전후의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어 애초부터 축제성과 함께 개방적인 명랑함과 소란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다이라쿠다칸은 결성 이후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겠지만, 마로 아카지의 춤은 어떤 종류의 ‘희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다이라쿠다칸이라는 컴퍼니 자체의 특성과 직결되는데, 다이라쿠다칸의 공연은 초기의 부토가 지닌 ‘망령’이나 ‘죽음’의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미지를 넘어서는 축제성과 명랑함이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1982년에 부토 컴퍼니로서는 처음으로 행한 프랑스·미국 공연이 해외에 부토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런 그들의 역동적 에너지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댄스 컴퍼니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

 

과거보다 스펙터클한 무대
도쿄에 위치한 신국립극장의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초청된 ‘죄와 벌(罪と罰)’(신국립극장 중극장, 2018년 3월 17~18일) 역시 다이라쿠다칸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신국립극장 중극장의 깊이 있는 회전무대와 웅장한 클래식 음악을 십분 활용, 과거 공연보다 스펙터클한 무대를 완성했다. 우산을 들고 벤치에 앉아 있거나 걸어다니는 댄서들, 침대에 홀로 누워 있다가 흑과 백으로 분리되는 마로 아카지, 철제 침대 밑에 누워 몸을 가늘게 떨고 있는 댄서. 벤치에 앉은 댄서의 모습은 19세기 인상파 회화의 한 장면과도 같다. ‘죄와 벌’이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번 공연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신의 신념대로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죽이고 돈을 갈취하지만, 죄의식에 시달리다 자수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위에서 묘사한 무대 뒤편의 회전무대는 소설의 내용과도 상통하는 인간 사회의 일상적인 단면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회전무대는 공연 내내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파노라마처럼 단편 단편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무대 앞쪽에서는 댄서들이 여러 가지 촌극을 벌인다. 뒤의 회전무대와 고정된 앞 무대는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앞뒤를 넘나드는 댄서들의 움직임을 통해 하나로 이어진다. 특히 큰 흰색 풍선을 짊어지고 무대 위를 배회하는 남자, 파랗고 긴 천에 정체 모를 물건들을 올리고 질질 끌면서 돌아다니는 또 다른 남자, 은은한 무늬의 보라색과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춤을 추는 여성 둘. 온몸을 하얗게 칠하고 미니멀한 흰색 의상을 두른 댄서들이 차지하는 무대 위에서 빨강·파랑·보라·노랑 등의 색깔은 기괴하고 섬세한 댄서들의 몸짓과 어우러져 독특한 그들만의 세계를 창조한다.

 

자연과 대조되는 인간의 ‘죄’

마로 아카지는 소설 ‘죄와 벌’ 속 청년이 살인 후에 쫓기면서 두려워하는 모습 자체가 ‘춤’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인터뷰를 통해 “부토의 댄서는 알몸으로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 것만으로 그 배후를 이야기해준다”고 한 것과 같은 지점이다. 그리고 공연을 통해 그 배후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범죄와 죄의식과 관련된 사회문제로 이어진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이번 작품에서 다루는 ‘죄’는 종교적인 ‘원죄’와 연결되는 좀 더 근원적인 개념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어디까지나 자연에 대조되는 인간, 거기서 생겨나는 두려움의 신체론”3을 구현하고자 했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포식자군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을 떨쳐낼 수 없으며 존재 자체가 ‘죄’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단죄하고 벌을 내릴 수는 없다. 그의 이런 생각은 비관론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다이라쿠다칸의 무대는 어떤 종류의 명랑함과 희극성을 발산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연의 중후반, 검은 나무 상자를 든 남자 댄서들이 등장하고, 이어서 여자 댄서들이 파란 천에 놓여 있던 콩·생선·단호박·돼지의 탈을 쓴다. 그녀들은 방어막처럼 검은 상자를 위로 하고 엎드린 남자 댄서들의 위에 올라타 춤을 춘다. 매우 사실적으로 형상화된 콩·생선·단호박·돼지의 탈이라니. 비일상적이고 회화적인 공간이 갑자기 일상적인 것들에 침범당한 것처럼 당황스럽고 우스꽝스럽다. 이 장면은 거대하고 흰 풍선이 마지막에 뻥하고 터지는 장면과 함께 ‘자연에 대조되는 인간’ ‘두려움’과 ‘단죄’의 키워드를 추출해낼 수 있는, 이 공연의 핵심적인 장면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수장 마로 아카지가 풀어내는 클라이맥스
이번 공연의 팸플릿에는 ‘죄와 벌’이라는 공연 타이틀과 함께, 새장 속에 갇힌 자신의 분신을 응시하는 마로 아카지의 사진이 실려 있다. 검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검은 의상을 입은 그가, 흰옷을 입고 새장 안에 다소곳하게 갇힌 자신을 본뜬 인형을 바라보는 그로테스크함. 이 사진에 실린 흰 인형과 검은 이미지를 앞세운 마로 아카지의 대비적 구도는 실제 무대에서도 이어지며, 이 장면은 이번 공연의 클라이맥스가 된다. 극 초반부터 침대 위에 흰 의상을 입은 댄서가 똑바로 누워 있는데, 그것은 마로 아카지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인형이었다. 공연 후반부터 흰 의상을 입은 인형과 검은 의상의 마로 아카지가 페어가 되어 등장하는데, 누가 진짜 마로 아카지인지를 두고 마지막까지 결론을 유보할 정도로 정교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에는 회전무대가 고정되고, 침대에 누워 있던 인형은 침대와 함께 무대 정면에 수직으로 세워진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마로 아카지의 몸은 뒤편의 인형과 붉고 가는 몇 개의 줄로 연결되어 있다. 철제 침대가 중앙에 세워지고 나서야 비로소, 새장에 갇혀 있던 사진 속 인형을 떠올리게 된다. 마로 아카지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인형과 가는 줄로 연결된 마로 아카지는 자신의 분신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지만, 멀어질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멀어지려고 한 것일까, 그냥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받아들인 채 어떤 절망에 빠져 불안에 떨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마지막 귀결로 향하는 이 장면에서 수장인 마로 아카지의 존재감은 유일무이하다. 40년 이상을 부토 댄서로 살아온 그의 몸짓이 노련하기도 한 데다가, 침대에 고정되어 있는 분신의 움직임도 감탄할만하기 때문이다. 가는 실로 연결된 마로 아카지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인형의 춤이, 실제 인간인 마로 아카지의 움직임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트릭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고도의 전략과 연출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이 분신은 정말 분신이라고 믿을 수 있을 만큼 무대 위에서 한 사람의 댄서로 존재하고 있었다.


분신과 마로 아카지. 이 둘의 밀고 당김. 어쩔 줄 모르고 불안에 떨며 서 있기만 하는 둘. 이 마지막 장면에서 소설 속 라스콜리니코프가 떨어내지 못한 죄의식, 근원적인 원죄를 안고 살아야 하는 인간, 원인 모를 불안감에 두려워하는 인간 존재, 종이의 앞면과 뒷면처럼 함께 동거하는 삶과 죽음… 이런 생각들이 단편적으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또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비일상적이고 기괴한 움직임의 반복 그리고 움직임 사이의 긴 여백은 응시와 사유의 시간을 부여해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무대 위에 선 그들의 ‘몸짓’과 ‘신체의 존재감’을 떠올리고, 그것들에 한없이 매혹되어가는 것이 아닐지.

 

① 舞踏Butoh大全’(하라다 히로미 저, 現代書館, 2004) 180쪽 참조
② 마로 아카지 인터뷰 ‘그가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彼じゃなくて、俺かもしれない’.
   http://okepi.net/kangeki/1273
③ 신국립극장 회보 ‘The Atre’ 2017년 12월호 참조

 

심지연 동경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 연극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일연극코디네이터와 연극 번역, 리뷰 작업을 병행하며, 최근 미시마 유키오의 희곡 ‘로쿠메이칸’을 번역했다.

사이트 지도

사이트 지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