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2월호 Vol.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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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망토를 입은 소녀가 소풍 바구니를 들고 숲 속을 거닐고 있다. 흔히 ‘빨간 망토’ ‘빨간 두건’ 등으로 불리는 동화의 한 장면으로, 두건 달린 망토를 걸친 소녀의 이미지만으로도 금세 이야기를 떠올릴 만큼 꽤나 익숙한 광경이다. 헌데 곰곰 생각해보면 어째 좀 이상한 풍경이긴 하다. 숲을 지나 홀로 할머니의 집으로 향하는 소녀라니, 실로 위태롭기 짝이 없다. 결코 짧지 않은 여정 가운데 홀로 던져진 미숙한 소녀. 그리고 소녀를 집 밖으로 내몬 무책임한 부모는 또 뭐란 말인가. 소녀가 동경하던 대자연은 곧 소녀를 위협하는 주체로 돌변한다. 때때로 소녀는 늑대의 꾐에 빠져 먼 길을 돌아가기도 한다. 이윽고 소녀가 무사히 목적지에 다다른 순간 아이로니컬하게도 위험은 최고조에 이른다. 일찌감치 소녀의 할머니를 잡아먹은 늑대는 할머니로 분해 소녀를 침대로 끌어들인다. 무언가 미심쩍었던 소녀는 그제야 의심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야기는 곧바로 참극으로 이어진다. 이 이상한 이야기를 처음 글로 완성한 것은 프랑스의 동화 작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다. 샤를 페로의 동화집 ‘교훈이 담긴 옛날이야기 또는 콩트(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e)’에 실린 ‘빨간 두건(Le Petit Chaperon Rouge)’은 함께 수록된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여러 형태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페로의 ‘빨간 두건’에서 소녀는 할머니와 더불어 늑대에게 희생된다. 그리고 뜻밖에도 이야기는 여기서 완결된다. 우리가 익히 기억하는 내용, 즉 사냥꾼의 도움으로 소녀와 할머니가 늑대의 배에서 나와 목숨을 부지하는 결말은 훗날 그림 형제가 덧붙인 것으로, 페로와는 무관하다. 그 밖에도 판본에 따라 빨간 망토 소녀가 늑대에게 잡아먹히기 직전 사냥꾼이 등장하기도 하고, 뒤늦게 나타난 사냥꾼이 소녀를 삼키고 잠든 늑대의 배를 갈라 소녀를 구한 후 늑대의 배 속에 돌덩이를 채워 넣는, 다소 잔인한 방식의 사필귀정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페로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빨간 망토’의 이야기 말미에 명기한 ‘교훈’에서 이 비극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기술했다. “소녀가 길에서 만난 수상한 늑대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늑대의 저녁감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늑대는 소녀를 협박하거나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정중한 말과 행동으로 소녀를 대했다. 하지만 그 늑대야말로 실은 가장 무서운 존재이지 않았느냐며 그는 소녀의 부주의함을 경고한 것이다. 페로는 동화를 통해 아동을 사회화하고자 했기에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잔혹한 묘사나 극단적인 가치관을 동원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페로뿐만 아니라 이 시기 동화작품은 아름다움과 젊음에 대한 동경을 최고의 가치로 추앙하고 과도한 식욕·색욕·물욕이 여기저기서 들끓는다. 질투와 배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악덕으로, 주인공이 겪는 고락의 원점이자 심판의 대상으로 종종 등장한다. 특히나 여성의 역할은 무척 제한적이다. 페로의 동화만 보더라도 여자 주인공은 늘 아름답고 기품 있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부지런한 성격, 공손한 말씨, 우아한 태도로 스스로를 제어함으로써 문명화된 세계에 무리 없이 적응하는 것만이 올바른 여성상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여성은 훌륭한 남성이 나타나 자신의 숨겨진 미덕을 발견하고 받아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태도를 취한다. 여성의 목표가 오로지 결혼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남성이 사회적 성취를 통해 아름다운 여성을 ‘획득’하는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남성에게 여성은 부수적인 존재지만, 여성에게 남성은 삶의 목적이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복종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경우 빨간 망토처럼 벌을 받는다. 페로의 말처럼 늑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즉 불필요한 호기심이나 욕망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소녀는 화를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녀는 구원받지 못했다. 페로는 사회적 교훈을 따르지 않은 여성을 그렇게 ‘단죄’했다. 다양한 해석을 낳은 ‘소녀의 모험’ 다행히 샤를 페로의 ‘빨간 망토’ 원전은 그림 형제를 거치며 소녀가 늑대에게 잡아먹힌 이후의 이야기에 좀 더 힘이 실린다. 홀로 광야로 나간 소녀의 여정과 모험이 상징하는 바가 그대로 입사식(入社式)을 뜻하는 것처럼, 늑대에게 삼켜지고 토해지는 결말 또한 통과의례의 한 형태로 보기 충분하다. 실제로 민담에 종종 등장하는 ‘삼킴과 토함’의 모티프는 영웅의 재탄생과 직접적으로 맞닿는다. 빨간 망토는 예상치 못한 상대를 만나 일찍이 죽음을 경험했다. 자연히 늑대의 몸 밖으로 빠져나온 다음 소녀는 이전과는 다른 성숙한 존재로 거듭났을 것이다. 이 밖에도 ‘빨간 망토’는 소녀의 성장과 맞닿은 여러 상징을 더해 단지 부주의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된 소녀의 이야기를 한층 그로테스크한 성장통과 연결 짓는다. 그중에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할머니의 집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7년간 어머니와 떨어져 살던 소녀의 모험에 방점을 찍는 이야기도 있다. 이때 소녀는 철로 된 옷을 입고 생활한다. 소녀는 철옷이 다 닳은 후에야 어머니를 보러 갈 수 있다는 말에 날마다 벽에 옷을 문지른다. 7년 후 마침내 철옷이 다 닳아 없어지자 소녀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또 늑대는 소녀에게 어머니의 살과 피를 고기와 포도주라 속이고 먹이기도 하며, 이때 소녀는 진실을 알리며 만류하는 고양이와 작은 새에게 오히려 폭력을 행사한다. 작은 실수로 인한 끔찍한 결말이기보다는 이 모두가 몇 차례의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스스로 야기한 수난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윽고 배를 채운 다음 졸음이 쏟아지는 소녀에게 늑대는 옷을 벗고 침대로 들어오라고 회유한다. 다분히 섹슈얼한 의미를 자아내는 대목으로 여린 소녀가 마주할 수 있는 위험을 순식간에 최고조로 올려놓으며 소녀를 시험한다. ‘빨간 망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지금도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인물의 이미지나 관계, 배경 등 여러 면에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야기인 탓에 끊임없이 각종 대중문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는 추세이기도 하다. 특히 늑대와 소녀의 새로운 관계에 집중해 원전에 담긴 숨은 상징을 전에 없던 참신한 형태로 빚어낸 이야기도 여럿 보인다. 영화 ‘레드 라이딩 후드’(감독 캐서린 하드위크, 2011)는 마을에 암약하고 있는 늑대인간의 정체를 중심에 둔 서스펜스극으로 ‘빨간 망토’를 재해석했다. 보름마다 늑대에게 제물을 바치는 마을. 아름다운 소녀 발레리는 자신의 연인과 함께 마을을 벗어나려 하고, 마을 내 얽히고설킨 치정관계 안에서 마침내 드러나는 늑대의 정체, 늑대와 발레리와의 관계가 뜻밖의 반전을 이룬다.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가 각본을 쓰고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감독한 극장 애니메이션 ‘인랑’(1999)은 1960년대 일본의 대체역사 세계를 무대로 한 첩보극으로 동화 ‘빨간 망토’를 면밀히 활용하는 동시에 신선한 해석을 더했다. 시민으로 위장해 폭발물을 운반하는 테러리스트 소녀들, 이른바 ‘빨간 두건’과 자치경찰의 한계로 창설된 또 다른 치안기관 ‘수도경’이 이들을 저지하는 모습은 기존 빨간 망토 소녀와 늑대의 대립관계에 새로운 해석을 덧입힌다. 정부 수도경과 공안부의 주도권 다툼에 철저히 이용되는 빨간 두건은 ‘인랑(人狼)’, 즉 “인간의 탈을 쓴 늑대”라는 뜻을 지닌 수도경 내 스파이와 공안부 세력에 의해 휘둘리다 마침내 사살되는 가혹한 운명으로 그려진다. 소녀를 죽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늑대, 자신이 사랑하게 된 남자가 늑대임을 알게 된 소녀는 기존의 일방적인 먹이사슬 관계를 완전히 전복한다. 해석은 다양해졌지만 그럼에도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빨간 망토’의 모든 판본을 비롯해 참신한 현대적 재해석 모두 늘 소녀의 모험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소녀는 스스로 익숙한 문명세계에서 야만의 세계로 발을 디딘다. 때로는 입고 있던 철옷을 긴 시간 갈아 평생을 옥죄던 족쇄를 풀어내며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세계로 서슴없이 들어서기도 한다. 명민한 지혜나 경계의 시선이 담보되지 않은 소녀의 여정은 늘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소녀가 발 디딘 야만의 공간에는 그를 위협하는 늑대가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파멸로 치닫는 결말을 넘어 마침내 부활에 이르는 소녀의 이야기는 자연히 신비롭고도 잔혹한 성장담과 맞닿는다. 담장 밖으로 나가 마주하는 새로운 세계는 그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그 가혹한 곳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소녀는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소녀는 어른이 된다. 글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DVD 2.0’ ‘Film 2.0’ ‘브뤼트’ 등 매체의 기자를 거쳐 영화·만화·장르소설·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림 서희 일러스트레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