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2월호 Vol.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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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개인에게 창작 기회를 제공하는 기획으로 주목받은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가 2001년 처음 시작했으니 어느새 20년을 향해가고 있다. 그간 엔톡 초이스(2011)·국립극장예술가시리즈(2011~2013) 등으로 공연 제목이 바뀌고 기획 의도가 변동을 겪기는 했으나 단원을 통한 신작 제작과 레퍼토리화 작업이 현재까지 끈기를 가지고 지속된 것은 언젠가 다시 조명되어야 할, 상당히 의미 있는 행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작업은 초기에 ‘전통의 현대화’에 대한 과제를 매우 착실히 풀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통춤 연구와 논문 프로포절 형식, 그리고 작품 발표로 이어지며 연구자의 입장으로 접근하는 엄격함과 집요함을 보여줬다. 엔톡 초이스와 국립극장예술가시리즈에는 높은 완성도를 갖춘 1시간 이상 길이의 장편 작품이 올랐다. 촉망받는 단원들이 춤뿐 아니라 제대로 된 작품에 대한 열망과 능력을 보여줬고, 관객에게 예상치 못한 신선한 만족감을 안겨줬다. 국립무용단은 2017년 하반기부터 ‘넥스트 스텝’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단원 가운데 차세대 안무가를 육성하겠다는 또렷한 이정표를 세웠다. 제작 과정을 시스템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이 기획의 문제의식이 그간 지속적으로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안무가에게만 창작을 맡겨놓는 것이 아니라, 제작 파트가 창작 이론과 제작 실무, 움직임 리서치 등 진행을 지원하면서 안무가의 창작 과정을 체계화하고 돕는 방식은 이 새로운 기획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번 넥스트 스텝을 밟을 안무가는 지난해 12월 초 내부 응모와 심사를 거쳐 선정된 정소연·김병조·이재화 단원이다. 이들은 개인 작품을 발표할 때의 소극적 패러다임을 넘어 연출·무대·음악·의상 등 전문 제작진과 협력해 더욱 입체적인 창작 과정을 거쳐 무용수에서 안무가로의 새로운 도전장을 낼 것이다. 17년 차 중견단원 정소연은 2005년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의 주인공으로 선정돼 이매방류 승무 춤사위의 변용에 대한 연구와 창작 실험으로 주목받았다. 2015년 선보인 ‘깊은 문_arari’에선 격정적인 현대적 감성을 담은 춤사위와 통념을 깬 신선한 구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에 다루려는 죽음·욕망·인내·삶이란 네 개의 주제는 다소 추상적이고 무거운 감이 있지만, 소리꾼 협연과 라이브 연주가 함께해 한국춤이 다루는 정서의 폭을 어떻게, 얼마만큼 뛰어넘을지 기대하게 한다. 2017년 9월, 국립무용단 ‘춘상’에서 주역을 맡은 김병조는 국립무용단뿐 아니라 휴먼스탕스 아트그룹에서 창작을 이어온 호흡으로 무용수의 생활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상과 대사 등이 사용될 ‘다큐의 결’과 어쩔 수 없이 무대가 갖게 될 ‘환상의 결’이 어떻게 보완하거나 충돌할지, 조화와 부조화의 이중적 질감이 어떻게 드러날지 기대된다.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한국춤을 타고 동시대적 감각에 도달할지, 평소 무대에서 보여준 현대적 감각과 존재감을 바탕으로 즐겁게 상상해본다. 이재화 단원은 셋 중 가장 어리고 상대적으로 신입단원 축에 속한다. 그는 경기·충청 중심의 풍물인 웃다리 농악에만 있는 ‘칠채 장단’을 감성과 연결해 변주하고, 이를 통한 악가무 일체의 무대를 욕심낸다. 젊은 안무가의 새로운 악가무 일체에 대한 패기가 기대된다. 최근 국립무용단의 신작을 리뷰하거나 단원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통해 직접 만나면서 이들의 깊은 고민과 문제 해결에 대한 집중력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술감독이나 객원 안무가와는 무관하게 단원들만이 갖고 있는 창작에 대한 일관된 고민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었다. 고전·신고전 등 현재의 담론에 등장하는 개념에 대한 오류를 짚어보는 것, 한국춤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에 갇혀 있는 시각을 확장하는 것, 무엇보다 깊게 드리워진 신무용의 그림자를 인식하는 것 등 이야기를 나누며 동시대성에 대한 이들의 고민도 들어볼 수 있었다. 이번 ‘넥스트 스텝’은 국립무용단의 실체인 단원들이 안무가가 되어 자신의 감각으로 제각기 다른 다양한 창작의 스펙트럼을 보여줄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된다. 더 많은 춤꾼이 국립무용단의 현재적 담론을 공유하되 해법은 각자의 춤 감각에서 찾는다면 ‘넥스트 스텝’은 다른 프로젝트와 차별성을 갖게 될 것이다. 글 이지현 춤비평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월간 ‘춤과 사람들’을 통해 등단해 월간 ‘몸’, 한국춤비평가협회 ‘춤웹진’에 비평을 싣고 있다. 국립무용단 ‘넥스트 스텝’ 날짜 2018년 3월 15~17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 관람료 전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