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2월호 Vol.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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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남 박지혜 막상 인터뷰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뭔가 어색하네요. ‘소녀가’로 삼행시 한번 갈까요? 이자람 소연이가 여인의 모습으로 가시나? (일동 박장대소) 소녀의 눈에 언젠가 저 숲이 들어온 그 순간부터 소녀의 마음과 머리는 오로지 저 숲에 대한 궁금함으로 가득했다 #2 빨간 망토를 입은 소녀 박지혜 작품 얘기를 해볼까요. 왜 ‘빨간 망토’인지 궁금하네요. 이자람 친구에게 이 작품을 소개할 때 어떻게 말하느냐면… ‘소녀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동화 ‘빨간 망토’를 판소리로 만들어 1인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거라고 하죠. 박지혜 그렇다면 흔히 알고 있는 ‘빨간 망토’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이자람 ‘흔히 알고 있다’고 했을 때의 기준은… 일단 제가 알고 있는 ‘빨간 망토’ 이야기는 작고 어린 소녀가 무서운 늑대에게 속아서 죽을 뻔했거나, 죽은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의 주요 테마는 힘세고 무서운 늑대와 작고 여린 소녀의 대비에 있죠. 그런데 ‘소녀가’는 그렇게만 알고 있던 동화의 줄거리를 다른 각도에서 보고자 한 작업이에요. 기대되죠?(웃음) 박지혜 제목이 ‘소녀가’잖아요. 소녀의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봤다고 보면 될까요? 이자람 여기선 ‘소연이’의 관점이죠. 제목이 ‘소녀가’니까 소녀의 관점은 당연히 갖고 있을 테고, 중요한 건 이야기꾼 이소연의 관점이죠. 박지혜 그렇다면 원작 동화와 다르게 소녀의 관점을 해석하고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이자람 그렇죠. 소녀가 처음 숲에 갔을 때 느낀 감정, 늑대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 남이 밖에서 보는 시선 말고요. 두려웠을까? 혹은 아무렇지 않았을까? 늑대가 멋있어 보였을까? 할머니 댁 문을 열었을 때, 소녀는 알았을까? 목소리를 들었을 때, 두려웠을까? 아니면 갈등했을까? 도망가기보다는 도전해보고 싶었을까? 등등… 소녀의 욕망이 그 순간에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따라가며 질문을 던지면서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이소연 좋았어. 작품의 의미가 벌써 다 나왔네요.(웃음) 이자람 제목이 ‘소녀가’라고 해서 이 작품을 단순히 소녀만의 이야기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소녀건, 소년이건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자연스럽게 내보일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거든요. ‘소녀가’이든 ‘소년가’이든, 이 작품이 우리의 학습된 눈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박지혜 소연 씨는 작품의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인상이 어땠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이소연 소녀가 침대에서 뛰쳐나올 때, 그 부분을 읽을 때의 인상이 기억에 남아요.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실크 재질의 아주 부드러운 옷이 스르륵 벗겨지는 느낌 있잖아요. 내가 벗으려고 한 게 아닌데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느낌. 그런 기분이었어요. 덮고 있던 얇은 옷이 벗겨지는 느낌. 살풀이 천 같은 것이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달까요. 박지혜 그 느낌이라는 건 시원했다거나, 가벼워지는 건가요? 이소연 깃털 같은 건 아니고요. 그냥 그 부분을 읽는데 어떤 온기가 느껴졌어요. 가보지 않은 길로 갈 거야 재미있어 보이는 곳으로 갈 거야 #3 이소연 100퍼센트 박지혜 소연 씨는 이전에 자람 씨를 만난 적이 있죠. 지난해 국립창극단 ‘흥보씨’의 작창가이자 음악감독으로 만난 걸로 아는데, 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이소연 소통이 굉장히 잘 됐어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통’보다는, 단원들의 이야기를 매우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그렇게 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갖고 있는 동시에 개개인의 의견을 다 들어줬어요. 자칫 작품이 산으로 갈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주변의 이야기를 반영하면서도 작품의 방향이 틀어지지 않도록 끌어가는 것을 보면서 무척 현명하고 포용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이자람이다.’ 박지혜 이번엔 1대 1로 만났잖아요.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으니까요. 어떤 점이 기대되나요. 이소연 기대보다는 기댈 데가 없네요. 작업을 하다 보면 나한테서 안 풀리는 게 있으면 또 다른 사람한테 나오는 것이 있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목이 안 풀려도 전부 제게서 끌어내야 하는 거니까. 사실 막막해요, 지금. 이자람 이 작품은 ‘이소연 100퍼센트’예요. 이소연 그게 걱정이에요. 굽힐 데가 없으니까. 이자람 숨을 데가 없죠. 이소연 그래서 그때 제가 그렇게 말했잖아요. 왜 저 혼자냐고. 이자람 이소연의 첫 질문이 그거였어요. “왜 혼자예요?”(웃음)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소연이가 국립창극단 무대에서 연기한 역할들, 이를테면 ‘흥보씨’의 정씨부인,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옹녀… 그런 캐릭터를 훔쳐보다 보니까 이 사람에게서 어떤 유머가 느껴지더라고요. 이소연은 엄청 웃기는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소연 웃기는 사람이래.(웃음) 이자람 그래서 이소연이라는 소리꾼이 어떤 캐릭터이고,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걸 파헤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흥보씨’ 작업할 때 소연이의 몸이 너무 자유로워서 놀랐거든요. ‘몸이 자유롭다’는 게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그때 제가 본 이소연의 자유로움은 무언가를 굉장히 잘 흡수하는 데 있는 거 같았어요. 훈련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흔히 말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습관 없이 A를 제시하면 A 그대로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렇게 배우고 연습한 춤을 어찌 보면 이상하고 생뚱맞을 수 있는 장면에서 추는데, 되게 잘하더라고요. 이소연 저 그 장면 날마다 연습했어요. 무대 서기 전에 항상 춤 먼저 연습했거든요.(웃음) 이자람 본 사람들은 알 텐데, 그 장면에서 정씨부인이 웃지 않고 그런 춤을 추는 게 생뚱맞은 구성이거든요. 그런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너무나 잘 해내는 게 진정한 이소연의 유머라고 생각했어요. 이소연 사실 처음에는 움직임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곧바로 안무가에게 질문하기보다는 의도한 이의 생각을 읽어보려고 노력했죠. 왜, 질문을 하면 내 입에서 정답을 만들어버릴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그래서 그냥 기다렸어요. 그건 상대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 같아요. 이 부분에서 춤을 추라고 한 이유가 있을 거다. 나중에야 알았죠, 이게 이런 의도였구나. 박지혜 그 장면이 이렇게 웃길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이소연 아뇨, 공연이 끝날 때까지 몰랐어요. 앞에서는 중요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뒤쪽에서 혼자 추는 거라서 그저 볼 사람은 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했죠. 혹시 보게 된다면 좀 유쾌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은 했지만…. 박지혜 ‘소녀가’ 제작이 진행 중이죠. 무대에 설 소리꾼은 이미 정해졌고, 대본은 거의 완성했고요. 작품이 먼저 나오고 캐스팅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캐스팅이 완료된 후에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주인공이 이소연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들이 있나요? 이자람 작품의 주인공이 소연이가 아니었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대본을 쓸 때부터 이건 당연히 이소연이 할 것이다, 정해놓고 만들게 되더라고요. 이를테면 어떤 부분에선 소리꾼이 움직임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건 아마도 제가 이전에 이소연이 연기한 정씨부인의 움직임을 봤기 때문이겠죠. 그래서인지 장면만 납득할 수 있도록 만들면, 이 사람이 잘 수행해낼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있어요. 여러 작품에서 본 이소연이라는 배우의 장점이 잘 드러나도록 만들고 있죠. 이소연 제가 춤을 안 췄으면 어쩔 뻔했나요.(웃음) 이자람 그리고 ‘흥보씨’에서 무엇보다 이소연이 눈에 띈 이유는 ‘유머’였어요. 정씨부인이 처음 등장할 때 꽤 슬픈 곡조의 노래를 만들었거든요. 그 노래가 무척 웃긴 상태로 연출됐는데, 코드를 정확히 포착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바로 알더라고요.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이 사람은 개그를 잘 읽어내는 눈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소연의 유머를 마구마구 뽑아내고 싶어요. 언제 또 이런 작품을 해보겠어요. 이소연 안에 숨어 있는 능청맞은 이소연을 뽑아내서 대한민국, 그리고 전 세계 관객들과 이 유머를 나눠 가질 거예요. 소녀의 뜀박질은 날쌔고 가벼워 막을 자 없는 열차처럼 거침없이 땅을 딛고 쑥쑥 앞으로 나아간다 #4 부채 하나 들고, 홀로 나서다 박지혜 국립창극단에서 혼자, 모노드라마를 하게 됐는데요. 1인 창작판소리를 해본 경험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소연 30분 길이의 ‘안티고네’라는 작품이 있었고, 지난해 6월엔 ‘안네의 일기’를 공연했죠. 박지혜 사실 전통 판소리에서는 소리꾼이 혼자 이야기를 이끌어나가잖아요. 그런데 이번 작업에선 왜 혼자라는 점에 대해 막막함을 느꼈는지 궁금해요. 이소연 관점의 차이, 입장의 차이인 거 같아요. ‘흥보가’나 ‘적벽가’를 혼자 부를 때는 이미 그 소리를 배우면서 익힌 생각이 무대에 반영돼 있잖아요. 그런데 ‘소녀가’는 새로운 내용, 새로운 이야기인 데다 대본을 쓴 작가의 생각을 아직 다 알지는 못하니까요. 그리고 이 대본을 내가 어떻게 표현해내야 할지 아직 학습이 되지 않았죠. 그래서 좀 부담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자람 전통 판소리는 이미 무대에 선 사람도 많고 롤모델도 있는데, 이 작품은 이소연이 처음이 되는 거니까요. 박지혜 1인 창작 판소리뿐 아니라 여러 공연에서 보면,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하는 ‘스토리텔러’가 있고, 연기하는 ‘배우’가 있고, 또 ‘소리꾼’이 있잖아요. 물론 이 세 가지 역할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그중 어떤 것이 가장 흥미롭나요. 이자람 소리꾼의 몸, 배우의 몸, 스토리텔러의 몸…. 이소연 그 세 가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변화하는 사이, 중간점이 재밌는 거 같아요. 이자람 그럴 수 있겠네요. 어쨌든 그 세 가지 몸은 내 안에 모두 있는 거니까. 이소연 노래할 때도, 연기할 때도 스토리텔러 입장에서 하죠. 그래서 그 사이가 가장 긴장되고 재밌는 거 같아요. 이야기꾼이자 소리꾼이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풀어내면서 왔다 갔다 하는 거, 그게 1인 판소리의 매력이죠. 이자람 1인이 연행하는 ‘판소리’라는 형식을 보면, 연행자의 유머 감각이 공연을 좌우하게 돼요. 판소리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유머가 있는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거거든요. 그 유머는 개개인의 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제 자신이 유머 있는 소리꾼이라고 생각해요. ‘이방인의 노래’를 하든 ‘억척가’ ‘사천가’를 하든, 그리고 대본을 쓸 때도 유머가 들어갈 거예요. 박지혜 만드는 이와 연행하는 이의 유머가 만났을 때의 화학작용이 궁금해지네요. 이자람 이소연의 유머 감각과 이자람의 유머 감각이 자유롭게 노닐다 ‘엇!’ 하고 딱 만나서 꽃피우길 바라는 중이에요. 나는 더 멋지게 자랄 거야 나한테는 더 찬란한 시간들이 올 거야 #5 무대에 오르고 오르면 박지혜 현재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이자람 작창 단계에 있죠. 박지혜 작창을 하고 있고, 이 단계를 마치면 음악을 만들 거고, 그다음엔 연출을 할 거죠? 자아분열이 벌어지겠네요. 이자람 이미 벌어졌죠. ‘작(作)’에 대해 분노하고 있어요. 박지혜 ‘작 이자람’의 관점에서 볼 때, 다른 대본을 쓸 때와는 다른 ‘소녀가’만의 특징이 있나요? 새롭게 발견한 부분이랄까요. 이자람 다른 건 모르겠고 ‘이방인의 노래’를 만들 때 생긴 ‘작’의 버릇인 거 같은데요. 굳이 판소리 대본이라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일단 가장 자연스럽게 대본을 만들고, 그 대본에서 다시 노래와 아니리를 나누는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작’의 해프닝이 두 번 일어나는 거죠. 어떤 이야기를 나의 언어로 쭉 풀어낸 다음, 노래와 노래가 아닌 구간을 나누는 것. 그런데 ‘소녀가’에선 이게 어떻게 노래가 되지 싶은 부분을 노래로 배치한 것이 꽤 있어요. 이야기로 술술 풀어도 될 부분, 이를테면 대화를 노래로 배치한 탓에 작창을 하면서 적지 않게 고민을 하고 있죠. 박지혜 저는 대본을 읽으면서 그런 부분이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어요. 예전에 이자람이라는 작가가 쓴 대본에선 대화나 새롭게 만들어진 부분이 주로 아니리로 배치됐는데, ‘소녀가’는 유독 소리가 많더라고요. 이자람 중요하니까, 그 부분이 너무 중요하니까 노래로 배치하게 되는 것 같아요. 판소리에선 이야기보다 노래가 좀 더 강력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거든요. 그래서 중요한 구간은 모두 노래로 배치한 거죠. 이소연 그래서 저는 그 부분이 기대돼요. 이자람 기대가 되는 부분이면서도 작창가로서는 ‘이걸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싶어요. 이걸 어떻게 음악적으로 감싸줘야 할까… 연출가와 배우가 고생하지 않으려면 작창과 음악이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연 (작창을 마친) 2주 뒤에는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지네요. 박지혜 대본을 완성한 뒤 작창을 시작했고, 음악 관련한 회의도 진행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가요? 이자람 앞은 순조로워요. 아이디어도 순조롭고요. 그런데 안 해본 것들이 대부분 뒤쪽에 있어서 그게 걱정이에요. 저로서는 해본 적 없는, 얼굴을 잠깐 붉히고 도전해야 하는 실험들은 뒤쪽에 있어요. 박지혜 그렇다면 아직 하지 않은 실험들은 ‘음악감독 이자람’에게도 새로운 거겠네요? 이자람 안 해본 것을 해보려고 ‘소녀가’를 하는 건데, 역시 안 해본 걸 하려니 앞이 깜깜하네요. 음악이 어떻게 될지 아직은 전혀 모르겠어요. 박지혜 영감을 찾으러 가야겠네요. 이자람 ‘소녀가’는 여러 번의 환골탈태를 거칠 거예요. 대본을 만들며 이렇게도 해보고, 작창을 거치면서 또 다르게 됐다가, 음악이 얹어지면서 또 한 번,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소연이를 만나서 또다시….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무가와 함께 새롭게 만들어질 거고, 다시 공연장에서 관객과 만났을 때, 공연 1일 차부터 5일 차까지… 계속해서 성장할 거예요. 내년이 되면 또 달라질 거고요. 작품이 완성된 후에 저는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요. 궁금하네요. 인터뷰 진행 박지혜 극단 양손프로젝트에서 연출을 하고 있으며, ‘소녀가’ 창작 작업에 드라마투르기로 참여하고 있다. 정리 김태희 국립극장 홍보팀 사진 전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