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당시 정부에서는 남산을 중심으로 <종합민족문화센터>건립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에는 국립극장을 비롯하여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양성소, 예총회관, 국립중앙도서관, 현대미술관, 세종대왕기념관 등이 착공될 예정이었다. 가장 먼저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양성소(국립국악고등학교의 전신)가 1967년 12월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이후 국립극장 별관으로 되어 현재 별오름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973년 8월 국립극장이 완성되면서 바야흐로 남산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남산의 국립극장 대극장은 명동의 구 국립극장의 무대보다 8배나 넓은 400평의 규모와 회전무대, 좌우 이동무대 등 당시 최첨단의 무대 시설을 갖춘 메머드급 예술극장이었다.
1973년 5월 국립합창단이 전속단체로 창설되고, 국립무용단은 이분화되어 국립무용단과 국립발레단으로 나뉜다. 또한 1972년 국고보조단체로 인수한 예그린예술단은 <국립가무단>으로 개칭되었다. 명동의 구 국립극장은 낙찰이 안돼 당분간 예술극장으로 사용되었다.
이 시기 국립극장 산하에는 최대 8개의 전속단체가 운영되다가 1977년 10월 국립가무단이 <시립가무단>으로 이관되고, 1981년 8월 국립교향악단이 한국방송공사(KBS)로 다시 운영권이 이관되었다. 1995년 국립관현악단이 창단되어 국립극장은 총 7개 전속단체를 운영하였다.
1999년 1월 29일 책임운영기관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공포(법률 제5711호)됨에 따라 국립극장은 2000년 1월 1일부터 책임운영기관이 된다. 전속단체로 있던 국립발레단과 오페라단, 합창단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하고 4개 단체(국립극단,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가 국립극장 소속으로 운영된다.
2009년 1월 1일부터 국립극장은 책임운영기관 제4기를 맞이하면서 예술성과 생산성, 국내외 교류협력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 사업으로는 정오의 음악회, 국립극장 고고고, 국가브랜드공연, 청소년공연예술제,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을 비롯하여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