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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호 Vol.371

첫 여성 감독이 쏘아 올린 위대한 걸음

깊이보기 하나 | 연출 김광보·작가 고연옥

박남옥 역 국립창극단 이소연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1950년대 이야기이지만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2000년 ‘우루왕’, 2011년 ‘화선 김홍도’ 이후 9년 만에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이 뭉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의 삶을 들여다본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박남옥 감독이 영화 ‘미망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쫓아가면서, 일제 강점기부터 전후까지 그가 살아온 이력을 되돌아본다. 이 작품의 연출과 극작은 지난해 세종문화회관 산하 9개의 예술단체의 합동공연 ‘극장 앞 독립군’으로 호평받은 김광보·고연옥이 맡았다. 두 창작자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품의 창작 방향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연출 김광보


1950년대 진취적 여성, 아프레걸
국립극장 전속단체 합동공연 제안을 듣고 고연옥 작가의 머리에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아기를 업고 메가폰을 쥐고 있던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의 사진이었다. 이분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여성의 역사를 그릴 수 있겠다 싶었다. 아기를 업고 일하는 여성의 모습이 퍽 상징적으로 느껴졌다. 그가 업고 있는 것이 박남옥 감독에게는 아기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족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사회 통념일 수도 있었다. ‘명색이 아프레걸’이 1950년대 활동한 여성 영화감독을 다루면서도 동시대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1954년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이 등장한 이후 1990년대 전까지 여성 감독은 홍은원·최은희·황혜미·이미례 등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1990년대 변영주·임순례 감독이 등장하기 전까지 여성 감독의 수도 적었지만 이들의 작품 역시 매우 드물었다.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장르인 영화는 여성 감독에게 몹시 폐쇄적이었다. 1955년 ‘미망인’을 만든 박남옥은 여성 감독의 시작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제목에 등장하는 ‘아프레걸’은 전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인 ‘아프레게르apres-guerre’에서 온 단어다. 전통적 여성상을 벗어난 새로운 여성상의 등장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소비를 탐닉하고 성적 일탈을 꿈꾸는 악녀의 이미지로 변모돼 1950년대 여성을 비난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일제 강점기부터 6.25전쟁 이후까지 격동의 시절을 살아간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을 통해 ‘아프레걸’을 재조명하고 지금까지도 쉽지 않은 일하는 여성의 삶을 고민하게 한다. 1950년대 6.25전쟁을 전후해 남성의 빈자리를 여성이 대신하게 되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했다. 어느 시대보다 주도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 등장한 시기였다. 전후 사회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면서 남성들은 일하는 여성들이 집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수구적인 여성관을 내세워 진취적인 여성을 주저앉히기에 바빴다. 고연옥은 이런 흐름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여성 의식이 크게 달라졌고, 미투Me-Too 이후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향상됐다. 이럴 때일수록 다시 보수적 움직임이 등장한다.”  

아프레걸은 전쟁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여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 시대와 어울리는 단어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원조 아프레걸 박남옥이 걸어온 길을 통해 앞선 세대를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고자 한다.

작가 고연옥


어머니 세대가 극복한 것
‘명색이 아프레걸’은 1954년 ‘미망인’의 준비 과정부터 1955년 영화가 완성되고 상영되는 제작기를 들려주는 한편, 일제 강점기 학창 시절 한국 기록을 보유한 투포환 선수이자, 배우 김신재의 열렬한 팬으로 전후에 영화계에 입문해 영화감독을 꿈꾸는 박남옥의 일화를 소개한다. ‘명색이 아프레걸’ 극본에는 극중극으로 펼쳐지는 영화 ‘미망인’과, 아이를 들쳐 업고 영화를 제작하는 1950년대 여성 감독의 이야기와, 세상의 장벽을 넘어 영화의 꿈을 키워온 박남옥의 삶이 긴밀하게 엮여 있다. 김광보 연출은 ‘미망인’을 촬영하는 현재 시점과 박남옥의 과거 시점을 한 무대에서 동시 진행시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무대를 만들 생각이다. 

영화 ‘미망인’은 전쟁미망인 이신자의 자유연애사가 주요 내용이다. 여성 감독 시각에서 여성의 솔직한 욕망을 담아내고 있으며 1950년대 전후 시대의 사회상과 문화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광보 연출은 “미니멀하면서도 여성의 심리를 잘 포착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명색이 아프레걸’에서는 영화 제작 과정의 일환으로 ‘미망인’ 장면을 일부 차용해 재현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필름 보관 과정에서 훼손돼 정확한 결말을 알 수 없지만 ‘명색이 아프레걸’에서는 배신한 젊은 연인 이택균을 이신자가 살해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흔히 ‘미망인’의 주인공 이신자가 모성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라고 하는데 고연옥 작가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영화에서 이신자 역할을 맡은 이민자 배우의 느낌이 묘했다. 이민자가 연기한 이신자는 모성에 별로 관심 없어 보였다. 아이가 놀고 있으면 보통 눈으로 아이를 쫓기 마련인데 그런 게 없었다. 아이를 친척에게 보낼 때도 오히려 쿨하게 보낸다.” 

‘명색이 아프레걸’의 박남옥은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도 육아 책임을 고스란히 맡아야 하는 여성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향을 일으키는 현실에서 여성의 일과 육아는 우리 사회에 예민하게 파고드는 문제다. 현재 일상 속에서도 일하는 엄마의 고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엄마의 식생활이 아이의 건강을 좌우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모성애가 사회생활을 하는 엄마에게 죄인의 감정을 들게 한다.” 최첨단 미래 과학이 집결된 우주과학 분야에서도 여성이 느끼는 육아 책임은 덜하지 않다. 남성 우주비행사들은 자기 아이들에 대해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여성 우주비행사들은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시대와 국가는 다르지만 전 세계 여성이 겪는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진취적 여성이었던 박남옥이 지고지순한 삶을 살아온 배우 김신재를 동경한 것이 모순되게 보이지만, 여성의 희생과 모성애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아이에게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든 것이 여성의 현실이다. 고연옥 작가는 이 이야기를 아이와 엄마의 관계로만 좁혀 보는 것은 아쉽다고 했다. “결혼하든 그렇지 않든, 아이가 있든 없든,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단지 아이가 있으면 더 힘들 뿐이다.”

작품 속에서 1950년대를 진취적으로 살았던 박남옥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우리말이 서툰 ‘미망인’의 촬영감독 김영준을 통해 전해진다. 외부자의 눈으로 거리 두기를 통해 박남옥 감독의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고연옥 작가는 김영준의 카메라가 박남옥 감독이 업고 있던 딸 이경주 여사의 눈이 돼주기를 바랐다. 딸 이경주 여사는 박남옥 감독의 자서전을 정리하고 완성했다. 자서전 후기에 “괄괄한 엄마의 성격이 맘에 들지 않아 누가 닮았다고 하면 싫었는데 엄마의 삶을 정리하다 보니까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깨달았다”라고 밝힌다. “흔히 엄마처럼 살기 싫어, 엄마 인생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고 하는데 그분들이 어떤 것을 극복하며 살았는지 찬찬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고연옥 작가는 이경주 여사가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 전 세대의 여성들을 살펴보고 알아갔으면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을 통해 오늘날 여성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명색이 아프레걸’은 국립극장 전속단체의 합동공연이라는 점에서도 기대하게 한다. 김광보 연출은 “공연은 관객과 만나 완성되고 결정되는 장르이기 때문에 특정한 스타일을 예측하기는 힘들다”라고 밝혔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진취적 인물의 투쟁기이면서도 국립극장의 예술단체가 재능을 모아 만드는 작품인 만큼 스타일 면에서도 기대가 된다. 특히 작품을 만드는 창작진이 그동안 뛰어난 협업 결과물로 신뢰를 준 김광보 연출, 고연옥 작가, 나실인 작곡가라는 점에서 더욱 믿음이 생긴다. 

국립극장 기획공연 ‘명색이 아프레걸’

2020년 12월 23일~2021년 1월 2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R석 5만 원 S석 3만5천 원 A석 2만 원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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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성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을 지냈으며 ‘뮤지컬 탐독’의 저자이다. 비대면 시대 공연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공연을 통해 삶을 윤택하게 하는 필자가 되고자 한다

사진 황필주 STUDIO79, 전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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