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호 Vol.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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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지한 판소리’의 시대라는 시간적 우회로를 돌아 다시 ‘노는 판소리’의 귀환을 느끼다 판소리와 청중 두 시간에 달하는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 ‘노인과 바다’ 광주 공연이 판소리 특유의 “더질더질”이란 여흥구와 함께 마무리됐다. 코로나19 재확산의 심상찮은 분위기 속에서 어려운 발걸음으로 모인 청중의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박수 소리는 충분히 크게 들렸다. 청중을 향해 정중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무대에서 퇴장하는 이자람의 얼굴에서 눈물이 엿보였다. 여느 때의 공연 끝 안도감이나 감격과는 달랐을 것이다. 전날 서울과 수도권의 거의 모든 공연장은 예정된 공연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문을 닫았다. 짧은 안정기를 뒤로하고 감염병 1차 확산 때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2차 확산 국면으로 막 접어든 상황이었다. 공연을 마친 이자람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 갔을지도 모른다. ‘이 공연을 청중과 함께 다시 할 수 있을까?’ “일청중, 이고수, 삼명창”이라는 말이 있듯 판소리 연행에서 청중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 판소리는 본질상 무대와 청중 사이의 경계가 흐릿한 연행예술이다. 청중이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는 관조적 음악과는 거리가 먼 예술 양식인 것이다. ‘말 없는 판소리’라 불리며 19세기 말에 탄생한 기악 양식인 산조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길게는 한 시간에 달하는 산조 한 바탕 연주가 대부분 침묵과 고요 속에서 이뤄지는 것은 서양식 ‘진지한’ 연주 관행에 영향을 받아 음악적 소통의 본질이 왜곡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 3 텔레비전 창극의 추억 나는 ‘대중문화로서의 판소리’에 대한 옛 기억의 마지막 자락을 공유한 세대에 속한다. 내 어린 시절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까지 판소리(창극)는 연극 요소가 강화된 단편적 형식으로나마 텔레비전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처럼 자주 방영됐다. 조상현이나 오정숙 같은 소리꾼이 텔레비전에서 늘상 놀부 부부로 출연해 웃음을 자아내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그 시절 어린 내게 조상현과 희극인 구봉서 사이의 경계는 희미하게 느껴졌다. 이후 ‘컬러 텔레비전’의 시대이던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민요와 전통음악은 좀 더 화려해진 상업음악에 가려진 채 제도화되거나 박제화되는 한편, 소리꾼들은 ‘명창’이라는 존칭으로 불리게 됐다. 어린 나는 텔레비전에서 접하던 친근하기만 한 조상현 아저씨가 이른바 ‘국악계’에서 도포 자락 휘날리는 ‘조상현 명창’으로 새롭게 나타나는 모습에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물론 좀 더 성장한 이후의 내게, 서편제 보성소리의 계보를 잇는 탁월한 판소리 가창자로서 명창 조상현은 또 다른 발견이었다. 요컨대 판소리가 진지해지는 과정은 판소리의 예술적·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서양음악을 포함한 예술계에서 정당한 위치를 점하게 되는 과정인 동시에 판소리 본연의 미학을 재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다만 판소리의 품위와 진지함이 강조될수록 대중적 친화력을 잃어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중적 친화력의 상실은 또한 판소리 연행의 자기부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판소리의 본질이나 고유의 미학은 텔레비전 창극의 익살꾼 조상현과 보성소리 명창 조상현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창작 판소리 ‘사천가’를 들고 나타난 소리꾼 이자람에게 큰 감흥을 느낀 것은 이 점 때문이었다. ‘진지한 판소리’의 시대라는 시간적 우회로를 돌아 다시 ‘노는 판소리’의 귀환을 느꼈다고 할까. ‘노는 판소리’는 단순히 ‘대중화’되거나 ‘상업화’된 판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진지함과 놀이의 경계를 무화하는 인간 본연의 ‘놀이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4 놀이와 진지함, ‘진지한 놀이’ ‘놀이성’이라는 말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잠시 샛길로 빠져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의 저서 ‘호모 루덴스’(1938)에 대해서 간략하게 논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이 책이 인간과 인간 문명의 본질을 ‘놀이’에서 찾으면서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루덴스’를 인간에 대한 정의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이 20세기 초반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특히 나치 정권의 횡포에 대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집필됐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된다. 요컨대 하위징아는 합리적 사고와 프로테스탄트적 금욕주의에 입각해 경직된 ‘진지함’을 강조하는 서양 근대 문명의 경향으로 인해 인간성과 인류의 문화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위협을 느꼈다. ‘놀이’에 대한 하위징아의 강조는 상아탑 속 역사학자의 한가한 이론이 아니라 전쟁과 학살의 위협 속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부르짖는, 말하자면 “전쟁 대신 놀이를!”이라고 하는 간절한 외침과 같은 것이었다. 하위징아의 놀이 이론은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진지함’에 대한 그의 관점에서 독창성이 드러난다.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진지함은 ‘놀이하지 않음’일 뿐이고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반면에 ‘놀이’의 의미는 ‘진지하지 않음’ ‘심각하지 않음’이라고 정의해서는 그 의미가 완전히 파악되지 않는다. 놀이는 그 자체로 독립돼 있는 것이다. 놀이 개념 그 자체는 진지함보다 더 높은 질서 속에 있다. 왜냐하면 진지함은 놀이를 배제하려고 하는 반면, 놀이는 진지함을 잘 포섭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하위징아에 따르면 ‘놀이’는 ‘진지함’의 반대말이 아니다. ‘진지한 놀이’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5,6 고난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다 결국 ‘노는 판소리의 귀환’이란 ‘진지함을 포섭한’ 놀이성의 복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는 전통 판소리의 진지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청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희극인 광대로서 소리꾼의 역할을 극적으로 되살린다. 그는 신작 판소리 ‘노인과 바다’를 작창하면서 ‘사천가’와 ‘억척가’에서 ‘이방인의 노래’로 이어지는 이전의 1인극 창작 판소리에서 일관되게 시도한 서양악기 반주 첨가를 포기하고 극 전체에서 고수 1인의 북 반주만 있는 전통 판소리 연행 양식을 고수했다. 이에 따라 관객과의 소통의 필요는 오히려 더 커졌다. ‘놀이에 포섭된 진지함’이란 이러한 소통의 층위가 갖는 깊이에서 비롯된다. 극중 주인공인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청새치를 잡기 위한, 어쩌면 무의미해 보이는 투쟁의 나날을 이어가는 상황을 묘사하던 절정의 대목에서, 밤을 지새우며 필사적으로 낚싯줄을 잡고 있던 산티아고의 독백을 진양조로 이어가던 소리꾼 이자람은 문득 그 자신으로 돌아와서 절규하듯 이렇게 외친다. “나는 왜 판소리를 할까? 이 힘든 걸 왜 계속할까?” 이 소리를 듣는 청중은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이자람과 함께 마음속으로 추임새를 넣게 된다. ‘나는 왜 여길 와서 판소리를 듣는 걸까?’ 계속해서 산티아고의 것인지, 이자람의 것인지, 청중의 것인지 모를 노래가 이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기다리는 것들은 결국은 나타날까?” ‘노는 판소리’는 이와 같은 묵직한 실존적 물음을 청중에게 던지지만 결코 경직된 진지함에 머물지 않는다. 이야기와 노래, 웃음과 해학, 대화와 추임새 속에서 그 무거운 질문을 유쾌한 소통의 속 깊은 맥락 속으로 녹여내는 것이다. 인간은 숱한 고난의 시간을 그렇게 웃음과 놀이로 승화시켜 왔다. 음악과 예술이 인간의 곁에서 사라질 수 없는 이유다. 음악가들에게 더욱 가혹한 ‘코로나 블루’, 감염병 시대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 다시 한번 ‘노는 판소리’ ‘노는 음악’의 귀환이, 나아가 공연계 전반에서 ‘호모 루덴스의 귀환’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1 이자람은 창작 판소리 ‘노인과 바다’를 통해 ‘노는 판소리’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 2,3 요한 하위징아와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 4 청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소리꾼 이자람은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무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5, 6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는 전통 판소리의 진지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청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희극인 광대로서 소리꾼의 역할을 극적으로 되살린다 글 최유준 음악평론가.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교수. ‘조율과 공명’ ‘음악문화와 감성정치’ 등의 저서와 ‘뮤지킹 음악하기’ ‘아도르노의 음악미학’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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