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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호 Vol.369

이제 ‘한국 합창’을 이야기할 때

미리보기 셋 | ‘국악관현악과 한국 합창 : 시조 칸타타’


우리 정서와 말을 오롯이 살릴 수 있는 음악. 국악관현악을 하는 김성진과 합창하는 공기태가 나누는 ‘한국 합창’에 대한 진지한 고민


국악관현악 연주자 70여 명, 합창단 80여 명이 함께하고 대규모 합창으로 첫 노래를 시작한다. “하늘 땅 이 사이에 온 세상 만물 살아 숨 쉬도다.” 옛시조에서 가져온 가사다. 두 번째 노래에는 소프라노가 더해진다. “전원에 봄이 오니 이 몸 또한 할 일 많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공연하는 ‘국악관현악과 한국 합창 : 시조 칸타타’에서 관객이 만나게 될 장면이다.

국악관현악단, 테너와 소프라노, 대규모 합창단에 정가 가객이 함께하는 무대는 그리 익숙지 않은 모습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도 2010년 국악칸타타 ‘어부사시사’ 이후 10년 만에 새롭게 시도하는 칸타타 형식의 작품이다. 바흐?헨델이 즐겨 쓴 칸타타를 옛시조에 붙이는 이번 작업은 작곡가 이영조가 맡았다. 서양음악을 만들면서도 한국 전통음악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작곡가다. 그럼에도 청중으로서는 이 무대가 어떨지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이 음악은 서양의 것에 가까울까, 아니면 전혀 다른 영역의 소리일까.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공기태 창원시립합창단 예술감독은 “우리 음악의 바탕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입 맞춰 말했다. 두 음악을 적당히 절충한 것이 아니고, 우리 음악을 바탕으로 둔 채 서양음악의 요소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우리말로 된 시조 그리고 한국음악식 표현 기법을 사용한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한옥이지만 들어가 보면 수세식 부엌이 있는 집처럼” 완성돼, 서양음악이 더 익숙한 현대 청중에게 가깝게 다가올 작품이다. 한국음악의 매력과 서양음악의 편리함은 어떻게 완성된 형태로 결합할까. 두 지휘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양음악의 기법과 한국음악의 내용이 쉽게 결합될 것 같지는 않다.

김성진 맞다. 합창은 화성적이고, 국악은 선적이다. 그것도 굵은 획이 깃든 선이다. 둘을 섞기가 쉽지 않다. 생각해 보라. 우리말도 매끄러운 말은 아니다. 합창단들이 가곡이나 옛날 우리 음악을 한국어로 부르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너무 매끄럽게 깎아내서 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말로 된 합창 음악을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공기태 난도가 꽤 높은 게 맞다. 서양 노래를 부르던 단원들이 한국적 기법에 처음부터 익숙하기는 어렵다. 독일?이탈리아 노래에 발성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리허설에서의 낯섦이 두 번째부터 거의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말, 우리 정서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합창단 단원들에게도 낯선 작업일 것이다. 지휘자로서 어떤 기법의 변화를 주문했나.

공기태 한국음악은 미분화가 돼 있다. 남성 합창에서 제창(모두가 같은 음으로 부르는 것)을 할 때도 선율 속에 저마다 음정을 흔들 듯이 변화시켜야 한다. 서양음악처럼 모두가 똑같은 움직임을 만들기는 어렵다. 김성진 감독님께 이 부분을 묻곤 했는데 똑같이 맞추지 않고 가는 것이 좋다는 데 동의했다.

김성진 우리 음악에서는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게 오히려 맞다. 나도 국악을 처음 지휘했을 때는 많은 것을 통일성 있게 맞추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맞추면 우리 음악만의 에너지가 없어진다. 붓글씨를 자 대고 긋 듯이 쓰면 이상해지는 것과 같다. 여백과 대비가 있어야 한다.


그 같은 불확정성은 한국음악의 오래된 매력이다.

공기태 또한 현대적 요소이기도 하다. 어울리지 않는 속에서 어울림을 가지고 있다. 120년 전에 쇤베르크가 한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합창은 언어를 가지고 하는 것이니, 한국말로 노래했을 때는 서양 장르지만 한국적 요소가 더해진다. 우리 것을 세계화하는 데 합창과 국악의 만남만큼 적합한 장르도 없을 것이다.

김성진 서양에서 한국음악을 연주하고 나면 음악가들이 몰려와 세미나를 열어달라고 할 정도다. 특히 서양 작곡가들은 한국음악을 새로운 음악적 재료로 여긴다. 서양음악은 이제 색다른 소리와 조합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작곡가들에게 위촉하면 더욱 한국스러운 곡을 써내는 이유기도 하다.


두 분 모두 서양음악을 오래 공부하고, 국악 쪽으로 활동을 확장한 경우다. ‘시조 칸타타’에서 가장 대비될 두 음악 사이의 차이가 있다면.

김성진 서양음악은 고른 실로 짠 천이다. 우리 음악은 그렇게 짤 수가 없다. 실마다 선이 다 다르고 살아 있다. 소리를 섞는 것은 쉽지 않다. 서양음악의 정교한 3화음을 생각한다면 우리 음악은 다소 거칠어서 듣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찾는 이들은 이런 거친 요소에 매료된다. 서양음악이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 것이라면 한국음악은 길 없는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웅덩이도 만나고 길도 잃는 일은 멋진 경험이다.

공기태 서양음악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그레고리안 찬트를 보면 음표 위에 표기가 많다. 한국음악의 농현 같은 것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아름다움이라는 면에서 한국음악은 모든 음악의 시작을 간직한 장르다. 동시에 20세기 이후의 현대음악이 추구하는 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세계화할 가능성이 크다.


‘시조 칸타타’의 시조는 어떻게 선별했나.

김성진 자연·사랑·효라는 세 주제로 옛시조들을 골라 엮었다. 정가의 원형을 그대로 놓고 서양음악의 소리와 기술을 사용했다. 서양음악에 한국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음악을 바탕에 두고 서양 합창을 가져오는 것이라 지금까지 있었던 시도와는 다르다. 겉으로 보면 멋진 한옥이고, 들어가 보면 수세식 부엌과 편의 시설이 있는 집이라 생각하면 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2010년 황병기 예술감독 시절 국악관현악과 서양식 합창을 결합한 임준희 작곡의 국악칸타타 ‘어부사시사’를 공연했다. 또 공기태 감독은 청주시립합창단과 함께 ‘어부사시사’를 청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국악의 장르 혼용에 대한 청중의 반응은 어떤가.

공기태 단원들의 첫 리허설 반응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처음에는 낯설어한다. 우리 음악 교육은 언제나 서양음악으로 시작한다. 그다음에 곁들이는 식으로 한국음악을 공부한다. 따라서 ‘어부사시사’ ‘시조 칸타타’ 같은 작품을 어려워할 수 있다. 하지만 친근해지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 우리 정서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서양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70퍼센트만큼 이해하고 두 번째 들었을 때는 80퍼센트만큼 이해한다면, 우리 음악에 대한 이해는 50퍼센트에서 단번에 90퍼센트로 올라간다.


서양식 오케스트라가 아닌 국악관현악단과 대규모 합창단이 함께하는 만큼 음량의 균형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성진 음량 문제는 작곡가의 영역에 많이 속하지만, 연주 측면에서도 균형을 잡아갈 수 있다. 지난해부터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다. 청중에게 세밀한 소리를 들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대신 현악기를 두 배로 늘리고 소리의 레벨을 올리는 식으로 균형을 맞춰나가고 있다. 음량의 문제는 또한 청중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 청중은 드라마틱하고 웅장한 소리에 지나치게 익숙해 있다. 꽉 찬 것을 선호하고 있지만, 여백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시조 칸타타’를 들을 때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잣대를 쓰면 안 되고 여백을 누려줬으면 좋겠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시조 칸타타’처럼 현대화한 국악 레퍼토리를 가지고 세계의 유명 무대에 초청받아 서는 일이 가능할까.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김성진 물론 가능하다고 본다. 관현악은 큰 빌딩과 같은 음악이다. 초가집 100채로 100층 빌딩을 만들 수는 없으니, 쓰러지지 않도록 구조부터 탄탄히 만들어놔야 한다. 외국의 좋은 홀에는 대부분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그래서 올해 초 ‘신년 음악회’ 공연에서는 파이프오르간과 국악관현악이 함께하는 레퍼토리를 만들어봤다.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홀에서 초청 공연을 올리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왔을 때 연주할 곡이 있어야 한다. ‘시조 칸타타’도 그중 하나로 충분히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연 순연으로 지난 3월호 기사를 다시 게재합니다


김호정 ‘중앙일보’ 문화팀에서 음악·공연 등을 담당하고 있다. JTBC 음악 프로그램 ‘고전적 하루’, 유튜브 ‘유못쇼’ 진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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