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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호 Vol.369

음악 속에 심상을 들이다

미리보기 셋 | ‘국악관현악과 한국 합창 : 시조 칸타타’


ⓒ황필주 STUDIO79


동양음악과 서양음악,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의 대비. 이러한 극명한 대비조차 그의 손을 거치면 자연스레 공존으로 이어진다. 억지스럽지 않게 조화로운 음악, 작곡가 이영조의 음악이 바로 그렇다


조선 시대에는 노래를 ‘긴 말永言’이라 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긴 말’이었을 시조는 노랫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게 낭송된다. 음절을 기나긴 음에 싣는 것도 그러한데, 그것마저 해체해서 발음한다. 예를 들어 ‘월정명月正明’이라는 단어는 “우얼 저어어어엉 며어엉” 하는 식으로 부르는데, 발음만으로 가사를 온전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가창자는 마치 자신이 혼자 들으려고 노래 부르는 듯하지만, 이 또한 그렇지 않다. 해체된 발음은 단어가 가진 원래의 의미를 강화하는 방식이 아닌, 그 자체로 독특하고 새로운 음향 생성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점진적으로 해체하면서 쏟아내는 발음은 ‘점점 세게’ 또는 ‘점점 여리게’ 등의 셈여림 역동성에 실려, 긴 음들이 색 변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된다. 기악에서는 불가능한 ‘성악 음향’의 변화인 것이다. 시조에서 길게 늘어지는 주요 음은 보통 네 음 안팎인데, 그중 중요한 것은 완전 4도 간격의 두 음이다. 시조는 이 두 음을 기둥 삼아 세워진 매우 단순한 음향 건축물이다. 이러한 단순함과 느린 템포는 시조가 전통음악 장르 중에서도 대중적이기 어려운 장르로 남아 있게 한다. 



이영조 ‘국악관현악과 한국 합창 : 시조 칸타타’는 임준희 ‘어부사시사’(2010) 이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국악 칸타타다. 사진은 ‘어부사시사’ 2011년 공연 


대비하되 공존하는 요소들

이영조의 시조 음악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것에 속한다. 그의 음악 중 위에서 거론한 시조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 남성 합창곡 ‘월정명’인데, 현재 한국 합창단이 가장 자주 부르는 곡 중 하나다. 이 곡은 서양음악의 요소들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전통음악적 특징을 손상하지 않는다. 즉 동서양 음악이 어색하지 않은 화합을 유지한다. 화성에서는 시김새적 작은 음들을 뭉쳐 비非3화음적 진행을 주로 하다가 나중에는 3화음적 경향을 더욱 뚜렷이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이 음악은 시김새적 선율 구사, 음절을 해체하는 발음의 점진적 변화, 특히 여린 소리와 큰 소리의 대비를 강력하게 구사하며 음향 변화의 재미를 선사한다. 전체적으로는 가사가 말하는 ‘달빛 아래 뱃놀이하는 모습’에 대한 인상을 음악으로 ‘예스럽게’ 그려낸다.  

그의 또 다른 시조 음악은 독창곡으로 ‘황진이 시조에 의한 여섯 개의 노래’에 집합돼 있다. 이 노래들 역시 흔히 들을 수 있는 성악 레퍼토리며, 앞의 합창곡과는 다르게 음절 해체와 같이 발음 이해를 어렵게 하는 부분은 없다. 하지만 긴 음의 시작과 끝을 끌어내리거나 끌어올리는 부분 등은 시조와의 연관성을 어렵지 않게 짚어낼 수 있게 한다. 바로 긴 음의 반음 아래나 위로 미끌어지듯 또는 꾸밈음처럼 실행되는 작은 음 때문인데, 이 작은 음들은 선율에 색깔을 입히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화성적 대비에서 요긴하게 사용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청산리 벽계수야’다. 

이번에 새롭게 작곡하는 ‘시조 칸타타’는 크게 자연·사랑·효를 주제로 하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첫 번째 주제인 자연으로 사계절의 다채로운 변화를 다룬다. 허자·성운·고응척·이신의·원천석·이명한·황진이·주세붕 등 조선 시대 시조를 사용해 가사에서 예스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시조 가사가 아닌 것들은 작곡가가 필요에 따라 첨가한 것들이다. 

곡은 ‘긴 말’이나 ‘유장함’ 같은 시조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여러 가지 템포의 음악을 함께 사용한다. 이는 다악장 음악이 가져야 할 템포 변화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봄-종달새’는 가사가 내포한 내용을 그에 맞는 분위기로 묘사하는 일에 열심이다. 물의 일렁임은 2도 간격의 반복으로, 바람이 부는 것은 높은 곳에서 쏟아져 내리는 하강 선율로, 솔개의 날갯짓은 상승하고 하강하는 멜리스마로, 물고기의 뛰어오름은 파닥거리는 상승 선율로, 봄의 밭갈이는 오음음계와 쿵더박 중심으로, 종다리는 높은 소리 소프라노의 콕콕 찍는 소리로 표현한다. ‘가을-달’의 분위기는 긴 말 방식의 여창과 ‘월정명’ 등으로 그리며 가사가 주는 다양한 분위기를 생생히 묘사한다. 익숙한 방식의 음악적 묘사인 이러한 장면들이 전반적으로 분위기 변화를 이끌어가는 핵심이 된다. 이와는 다르게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하는 레치타티보적 음악 처리는 낭송으로 대비를 이룬다. 또한 ‘여름-녹음방초’는 노래와 레치타티보의 중간 성격을 갖는, 서양음악식으로 말하자면 아리오소인데, 여기에서도 분위기 묘사보다는 말의 전달에 주력한다. ‘겨울-대’ 역시 여름처럼 간단하게 처리됐는데, 가사의 내용에 따라 묘사적 부분(눈 내림을 의미하는 하강 선율), ‘청산리 벽계수야’와 비슷하게 반음계적 색깔을 보여주는 짧은 부분, 언어 낭송 위주의 표현이 섞여 있다.  

음악은 3가지 주제, 자연·사랑·효의 순서가 그대로 형식적 기둥이 된다. 사랑은 이명한의 시조 한 편과 황진이의 시조 두 편으로 채워진다. 자연(그중 특히 봄)과 효는 음악적으로 오음음계와 쿵더박 위주로 돼 있다. 즉 시작과 끝에 민속음악적 테두리를 둔 것이다. 세 부분의 형식적 틀은 자연의 대단한 길이 탓에 비율이 어긋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작곡가가 그 주제에 오래 머물고 싶어 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특히 봄 부분은 즐거이 약동한다. 민요적 봄과 시조적 가을의 대비적 상징성은 좀 더 큰 측면에서도 볼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의 음악, 옛날과 현대의 음악의 대비가 그것이다. 이영조는 이러한 대비가 억지스럽지 않게 공존하는, 자연처럼 맞물리는 상태를 이 곡에서도 추구하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 II ‘국악관현악과 한국 합창 : 시조 칸타타’

2020년 10월 22일

롯데콘서트홀

R석 5만 원 S석 3만 원 A석 2만 원

02-2280-4114


홍정수 음악학 박사. 저서로 ‘이영조 음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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