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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호 Vol.369

하나의 선율이 만든 백百의 감동

깊이보기 셋 |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10월 공연

매년 계절의 흐름에 따라 남산 자락을 물들여 왔다. 그 99회 공연을 찬찬히 살펴보자 

백百이라는 숫자의 무게
판소리 ‘춘향가’의 ‘십장가’ 대목은 수청을 들라는 신관 사또의 요구를 거절한 춘향이 매를 맞는 장면을 그린 것인데, 독특하게도 춘향은 매질 세는 ‘숫자’에 대구를 맞춰 자신의 심정을 호소한다. 사또에 대한 원망, 몽룡에 대한 그리움, 수절에 대한 의지 등 춘향이 느끼는 내적 감정이 다음과 같이 절절하게 전달된다
“‘일편단심 굳은 마음 일부종사 뜻이오니 일개형벌 치옵신들 일 년이 다 못 가서 일각인들 변하리까?’ 둘째 낱을 딱 붙이니, ‘이부절을 아옵는데 불경이부 이내 마음 이 매 맞고 영 죽어도 이 도령은 못 잊겠소!’ (…) 열째 낱을 딱 붙이니, ‘십생구사 할지라도 팔십 년 정한 뜻을 십만 번 죽인대도 가망 없고 어쩔 수 없소!’” 
춘향은 매 한 대 맞고 ‘일편단심’을, 두 대 맞고 ‘이부절’을, 열 대 맞고는 ‘십생구사’를 외치는데, 매질 세는 숫자가 늘수록 죽음을 불사한 그녀의 의지는 더욱 단단해진다. 매질이 끝나자 그녀를 지켜보던 좌우 구경꾼들과 관속들은 반주검이 된 춘향의 모습에 다들 눈물을 훔치고 돌아섰다고 한다. 춘향의 애끓는 감정이 ‘수량화’돼 표현될 때, 우리는 그녀 개인의 주관적 체험을 숫자라는 객관적 영역으로 치환해 쉬이 이해할 수 있다. ‘십장가’가 춘향의 내면에 대한 공감을 가장 잘 끌어내는 눈대목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정오의 음악회’가 곧 100회를 맞는다. 100이라는 숫자와 함께하니 비로소 그동안 ‘정오의 음악회’가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이 하나의 실체로 다가온다. 백百이라는 숫자는 ‘한 일一’자와 ‘흰 백白’자로 이뤄지는데, ‘흰 백白’의 자형은 엄지손가락 모양을 본뜬 것이다. 그래서 일백百이란 숫자는 엄지처럼 굵직한 수를 뜻한다. 2009년 처음 음악회를 시작한 이래 매년 계절의 흐름 따라 남산 자락을 물들이던 시간이 어느덧 엄지손가락 하나 치켜올릴 만큼의 역사가 된 것이다. 흔히 ‘정오의 음악회’를 말할 때 “꾸준하게 대중이 찾아준 프로그램” “드물게 롱런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긴 시간 살아남은 국악계 공연이 전무한 오늘 백이라는 숫자가 담보하는 무게는 남다르다.
‘정오의 음악회’에서는 그동안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이 서로 어우러져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예술 세계를 보여줬다. 국악이 대중과 괴리돼 전문가의 것으로만 계승된다면 박제된 예술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다. 그러나 ‘정오의 음악회’는 국악 마니아층을 위한 예술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스타 예술가나 대중적 레퍼토리를 흡수해 많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공연을 선보여 왔다. 
한편 ‘정오의 음악회’는 우리나라 음악 콘텐츠를 활용해 만든 첫 브런치 공연으로서 국악 공연 문화의 외연을 넓힌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 깊다. 정오라는 시간을 활용하는 만큼 공연과 함께 청중에게 한국 전통 다과를 대접하기도 하고, 공연 참여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 즐길 수 있는 ‘도장깨기’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정오의 음악회’는 공연장 안에서의 일회성 체험이 아니라, 공연장 밖으로 공연 체험의 범주를 넓혔다. 
특히 올해부터 새롭게 도입된 ‘정오의 3분’ 코너에서는 신진 예술가들의 실험 무대를 선보여 차세대 국악 작곡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와 노력이 있었기에 ‘정오의 음악회’는 전통의 계승과 창조를 동시에 이끌며, 높은 관객 만족도를 바탕으로 100회의 시간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11월 99회 공연, 100회 향한 감사와 바람을 담아 
11월 무대에서 ‘정오의 음악회’는 100회를 맞이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9월 공연이 취소됨에 따라 99회 공연을 올리게 됐다. 이번 무대에서는 그동안 ‘정오의 음악회’와 함께한 출연진과 제작진, 관객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이 해설자로 나서 관객의 이해를 돕고, 이승훤 국립국악관현악단 부지휘자가 지휘를 맡는다. 
11월 ‘정오의 음악회’의 첫 순서인 ‘정오의 시작’을 여는 곡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OST인 ‘에필로그’다. 오늘을 사는 후손의 삶이 꾸준하고 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나라에 헌신한 과거 영웅들을 기리는 곡이라는 점에서 뜻깊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의 협연으로 수준 높은 연주를 선보이는 ‘정오의 협연’ 코너에는 최용희 단원이 출연해 가야금 협주곡 ‘침향무’를 선보인다. ‘침향무’의 작곡가인 황병기는 가야금 명인으로서 국립국악관현악단 4대 예술감독을 지냈다. 다른 가야금 독주곡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기교와 선율이 돋보이는 이 곡은 명인이 한국음악의 원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신라의 무용가로부터 위촉받았다는 생각으로 쓴 곡이라고 한다. 
소편성 국악 실내악을 접할 수 있는 ‘정오의 앙상블’에서는 최덕렬의 ‘실내악을 위한 배꽃타령’이 초연된다. 전통음악의 고유성을 토대로 한 다채로운 음악적 실험을 거듭하는 창작국악그룹 불세출 소속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세대 작곡가가 그리는 국악의 미래에 대해 귀 기울여보기 바란다.
이번 공연을 빛내줄 ‘정오의 스타’는 경기민요 소리꾼 송소희와 함께할 예정이다. 송소희는 국악관현악 반주에 맞춰 ‘아리라리’와 ‘매화타령’ ‘태평가’를 부른다. 특히 ‘아리라리’는 그녀가 직접 작사한 곡으로, 옛 선조들의 ‘아리랑’을 재해석해 후대 우리의 목소리를 ‘아리라리랄라라’라고 부르는 선율에 실어 이끌어내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마지막 코너인 ‘정오의 관현악’은 ‘정오의 음악회’ 1회 첫 곡인 최성환 의 ‘아리랑 환상곡’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1976년 북한에서 작곡된 곡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자리에서 즐겨 연주돼 이제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곡이다. 선율악기의 독주가 하나씩 모여 파도와 같은 거대한 줄기의 아리랑 선율로 모이는 과정을 따라가며, 한 회 한 회의 시간이 모여 어느덧 100회의 역사가 될 ‘정오의 음악회’를 함께 축하하고 음미하기를 바란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2020년 11월 4일 11:00 ~ 11일 11:00 (일주일간 상영)
- 국립극장 유튜브(http://www.youtube.com/ntong2)
- 국립극장 네이버TV(http://tv.naver.com/ntok)
- 국립국악관현악단 유튜브(http://www.youtube.com/ntoknok)

글 이채은 ‘현재’의 삶을 바꾸는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 읽고 쓴다. 판소리계 소설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문학과 예술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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