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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호 Vol.369

11시 남산, 우리 또 만날까요?

깊이보기 하나 | ‘정오’의 사람들

무관중 비대면 온라인 공연으로 진행된 올해 7월 ‘정오의 음악회’ 현장

이 생경한 풍경이 얼른 지나고, 다시 따뜻한 정오의 햇살이 이곳을 비추기를. ‘정오의 음악회’ 100회를 기다리는 모두의 마음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는 말이 어째 태평하게 들린다. 지금 우리가 겪는 변화는 그 속도와 범위를 정의하거나 예측하는 것마저 불가능하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세상. ‘미증유未曾有.’ 이 단어를 이렇게나 많이 쓰고 읽게 된 것도 지금의 미증유 현상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
변화의 속도를 논하는 것이 무색해진 오늘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것은 변하지 않는다. 2009년 5월 시작한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는 만 11년 넘게 변함없이 달리고 달려 100회를 앞두고 있다. 올해 들어 총 세 차례 3월·4월·9월 공연이 순연되면서, 역사적인 ‘정오의 음악회’ 100회 공연 역시 점점 미뤄졌다. 오는 10월 공연이 성사된다면 99회가 될 것이고, 11월 공연이 열린다면 100회가 된다.
결국 ‘정오의 음악회’도 감염병이 불러온 변화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럼에도 어떤 것은 변하지 않는다.” 연주자는 연주하고 싶고, 무용수는 춤을 추고 싶다. 소리꾼은 노래하고 싶다. 극장은 그 아름다운 존재들이 무대를 채우길 바란다. 관객은 객석에 앉아 무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 그 소망과 욕구는 변하려야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언제가 될지 모를 100회를 앞둔 ‘정오의 음악회’ 100회 공연 특집 기사를 지금 이렇게 쓰고 있다.
이제는 국립극장의 대표 상설공연으로 자리 잡은 ‘정오의 음악회’. 첫 회 공연은 2009년 5월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렸다. ‘관객 저변 확대’는 199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창단 이후 언제나 코앞에 놓인 과제였을 텐데, 이른바 ‘입문자용’ 상설공연이 기획된 데는 당시 공연예술계 경향은 물론 사회 분위기의 영향이 있었다. 2000년대 대한민국을 점령한 단어 중 하나인 ‘웰빙well-being’. 웰빙 열풍은 2000년대 초중반까지 강력하게 작용했다. 그 흐름을 읽고 예술의전당은 2004년 9월, 주부들의 여가 시간을 채울 브런치 콘서트 ‘11시 콘서트’를 시작했다. ‘11시 콘서트’의 선풍적 인기를 목도한 여러 공연장이 앞다퉈 클래식 음악 중심의 브런치 콘서트를 상설화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는 오히려 웰빙 열풍이 조금 사그라진 2009년 시작됐는데, 보도자료에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늦었다. 하지만 다르다.”

‘정오의 음악회’는 황병기 전 예술감독 시절 시작됐다

‘황병기와 함께하는 정오의 음악회’
“‘정오’ 100회 인터뷰에 함께할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권태연 공연기획팀 기획위원은 첫 회를 회상하며 ‘영광’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2005년 국립극장에 입사해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만 10년을 보냈다. 
“2009년 1월 임연철 극장장이 부임하면서 첫 주력 사업으로 생각하신 게 상설공연이었어요. 정말 급하게 준비해서 그해 5월 ‘정오의 음악회’ 첫 공연을 올렸습니다. 단원들이 지금처럼 매월 무대에 오르는 게 익숙하지 않던 때라, 상설공연에 대한 단원들의 이해와 설득을 구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서둘러 기획하다 보니 프로그램을 심사숙고할 시간도 충분치 않아서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관현악과 협주곡, 여기에 그때까지는 이른바 ‘서비스’로 연주하던 드라마·영화음악을 모아서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첫 공연의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유료 관객 27명. 초대를 하고도 해오름극장 절반을 못 채웠죠. 그렇게 2009년 첫해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사실 그해에 ‘정오의 음악회’ 기획 방향이 확 바뀌는 어떤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스타’의 등장이었다. 2009년 11월 공연에 장사익이 섰다. ‘정오’ 최초로 해오름극장 객석이 꽉 찼다.
인지도 높은 대중가수나 뮤지컬 가수 등 이른바 ‘스타’는 강력한 유인책이었다. 바로 이듬해 안치환·한영애·남경주·동물원·이상은 등 이름난 가수들이 ‘정오’ 무대에 섰다. 내부의 거부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왜 우리가 대중가수 반주를 해야 하나?”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객석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는 비록 가수를 보러 왔더라도 국악관현악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고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정오’의 목표인 만큼 이후 프로그램 구성의 원칙이 단단해져 갔다. 공연의 중간 부분은 유연하게 열어두되 국악관현악 작품으로 시작하고, 또 끝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정오’의 원칙이다. 
‘정오의 음악회’ 첫 회부터 현재까지 줄곧 함께해 온 여미순 국립국악관현악단 악장이 권태연 위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여미순 악장은 ‘정오’ 첫 회인 2009년 당시에도 악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단체 최초의 여성 악장이었다. ‘정오’를 돌아보는 여미순 악장은 황병기 예술감독에 대한 여러 기억을 꺼내 보였다.
“여러 예술감독님을 겪었는데, 황병기 예술감독님은 연세가 가장 많은 분이었음에도 가장 신선한 아이디어, 가장 강력한 추진력, 가장 현대적 감각으로 음악회를 구상하고 계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과정에서 ‘정오’도 기획된 것 같고요. 국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의미,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여기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의미 등, 크고 묵직한 의미들을 담았지만 소박하게 시작한 공연이었습니다. 예술감독·연주자·기획자… 너나 할 것 없이 열정을 쏟아부었고, 성과도 컸다고 자평합니다. 예술감독이 바뀔 때마다 시스템에 여러 변화가 있는데, 그럼에도 유일하게 이어지는 게 ‘정오의 음악회’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죠.”
황병기는 이름 석 자만으로 여전히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여러 담론을 이끌어내는 존재다. 그런 그가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재임하던 시절(2006~2011)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가끔씩 ‘정오’의 무대에 마이크를 들고 조용히 올랐다. 웃는 듯 아닌 듯 그저 새초롬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무대 한쪽으로 걸어 나와 음악회의 시작을 알리던 명인. 그를 회상하다 권태연 위원과 여미순 악장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공연 끝나고 나가시면 로비에 ooo 홍초, ooo 빵, ooo 떡이 마련돼 있습니다.” 음악회 마무리에 조곤조곤 협찬사명을 빠짐없이 일러주는 그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위) 2009년 11월 장사익의 협연 무대는 ‘정오의 음악회’ 기획의 커다란 변곡점이었다
(아래) 특집 인터뷰에 함께한 표지 인물. 왼쪽부터 여미순·권태연·홍지원·김성진


“해설자는 관객을 그저 음악 앞에 모셔놓는 집사”  
황병기 이후 원일·임재원 예술감독이 ‘정오의 음악회’ 해설자로 나섰다. 오정해·송혜진·진양혜·박정자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해설을 맡은 시기도 있었다. 2019년 여름, ‘정오’ 10주년을 맞아 열린 관객 간담회에서 오랜 팬들은 해설자가 악기와 곡 설명을 충실히 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어떤 관객은 콕 집어 “예술감독이 해설자로 나섰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2019년 4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김성진은 새 시즌이 시작된 9월부터 ‘정오의 음악회’ 해설자로 나섰다. 그가 정의하는 ‘정오’의 해설자는 “관객을 그저 음악 앞에 모셔다 드리고 빠지는 집사” 같은 존재다.
“음악회에서의 해설을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취임하고 보니 예술감독이 해설을 해야 한다는데… 부담이 굉장히 컸죠. 지금도 여전히 어렵고요. 제 해설은 사실 위주이고, 또 짧습니다. 해설자이기 전에 예술감독으로서 곡 중간중간 무대에 등장하는 게, 어떤 면에서는 신뢰감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즉흥적인 말은 되도록 하지 않고, 가능한 한 준비된 내용만 전달하려고 하죠.”
김성진 예술감독 취임 이후 눈에 띄는 변화는 ‘정오의 앙상블’ 순서가 더해진 것이다. 소편성의 매력을 살린 실내악 작품을 선보이는 순서인데,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정오의 앙상블’을 위해 매번 젊은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실내악 작품을 위촉한다. 입문자를 위한 공연을 넘어 새로운  레퍼토리와 젊은 작곡가의 발굴이라는 창작 기능까지 수행하게 된 셈이다. 이른바 ‘브런치 콘서트’를 위해 새로운 작품을 위촉하는 노력은 이번 100회 특집 인터뷰에 함께한 모두가 꼽은 ‘정오’의 특별함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 ‘정오의 음악회’는 정오의 시작, 정오의 협연, 앞서 소개한 정오의 앙상블, 정오의 스타, 정오의 관현악, 총 다섯 가지 순서로 이뤄진다. 그중 ‘정오의 협연’에는 기악·성악은 물론이고 무용수까지 ‘협연자’로 등장한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단원들이 협연자로 나설 때도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이 협주곡의 독주자로 나서는가 하면,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 단원들도 소리와 춤으로 호흡을 맞춘다. 우리 전통춤·전통소리에서 정해진 악보 없이 춤과 소리에 따라 반주하는 것을 수성가락이라 하는데, 전통춤과 판소리가 협연으로 등장할 때면 관현악단 단원들도 수성으로 연주한다. 
“연주자 개인으로서는 우리 단원들도 다양한 음악을 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악보에 따라 정해진 ‘합주’를 하는 게 우리가 주로 하는 음악이잖아요. 무용단원이 살풀이를 출 때도 있고, 창극단원이 판소리를 할 때도 있어요. 그럼 보통 때와는 다르게 수성으로 반주해야 합니다.” 
관현악단이 악보 없이 기꺼이 연주하는 것. 대중가수의 반주자로 나서는 것. 그러다 또 어느 날은 온통 불협화음과 변박으로 채워진 아주 복잡한 악보를 마주하고 앉는 것…. 여미순 악장은 이 모든 것이 음악에 대한 단원들의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인터뷰에 함께한 ‘정오’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어린 홍지원 PD는 예술감독과 악장, 선배 기획자의 이야기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듣고 있었다. 그는 2016년 국립극장에 입사해 2019년부터 국립국악관현악단 PD로 일해왔다. 중장년 관객이 많은 상설공연을 매달 준비하며 젊은 기획자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정오의 음악회’는 해오름극장에서 주로 열려왔어요. 그때는 초중등학생과 중장년층으로 관객이 양분돼 있었죠. 해오름극장 리모델링이 시작되며 ‘정오’도 2018년 하늘극장으로 무대를 옮겼는데, 객석 수가 줄어들다 보니 지금은 중장년 관객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11년째 같은 객석에서 매 공연을 보시는 관객도 계시고, 오랜 팬이 많죠.”
고정 관객이 늘어난 만큼, 반복되는 레퍼토리를 줄여야 한다는 부담이 커진다. 입문자가 듣기에 너무 어렵거나 길지 않은 국악관현악 작품을 찾아내는 것, 동시에 그 많지 않은 작품이 겹치지 않게 매 시즌, 매회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은 ‘정오’가 풀어야 할 과제다.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은 첫 회 공연 레퍼토리이기도 하고, ‘정오’ 무대에서 가장 자주 연주된 곡이기도 합니다. 그런 곡이 많아져야 오랫동안 ‘정오’를 찾아주시는 관객에게 새로운 작품을 들려드릴 수 있겠죠. 중장년층의 취향은 어머니의 의견을 많이 참고하는데(웃음), 특히 어르신들이 어떤 가수를 좋아하시는지… 그런 트렌드를 전해 듣습니다. 한편으론 다른 분야의 젊은 예술가들이 ‘정오’의 무대에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처음엔 출연료가 맞지 않거나 국악관현악은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고사하던 분들도 한번 ‘정오’ 무대에 서고 나면 다음에 또 불러달라고 하세요.”

(왼) 관객을 얼싸안고 노래하는 소리꾼 남상일 
(오) 관객과의 적극적 교감은 ‘정오’의 큰 매력이다

(왼) 원일 전 예술감독

(오) 무관중 비대면 온라인 공연으로 진행된 올해 7월 ‘정오의 음악회’ 현장

다시 관객과 함께하는 ‘정오’를 기다리며
지금까지 누적 관객수 7만 2천 명을 기록한 ‘정오의 음악회’가 이뤄야 할 목표 중 하나가 ‘국악관현악 저변 확대’임을 부정할 수 없다. 클래식 음악계는 물론 전통예술계에서도 너무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기치가 ‘대중화’다. ‘국악의 대중화’라는 명제는 묘한 역설이자 영원히 풀리지 않는 난제로 다가온다. 이 난제에 대한 생각을  모두에게 물었다. 김성진 예술감독은 유럽에서의 경험과 함께 ‘국악의 대중화’에 대한 의견을 이렇게 전했다.
“유럽에서 한국음악을 연주하면 유럽 관객들이 훨씬 잘 듣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느냐면, 그들은 듣는 훈련이 돼 있는 것 같아요. 체계적으로 듣는 훈련이요. 어떤 음악을 하더라도 들으려고 합니다. 우리도 듣는 훈련에 좀 더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해요. 특히 국악은 우리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르에 비해 듣는 훈련이 더 안 돼 있어요. 전문가들, 국악을 하는 사람들만 듣는 음악이라는 인식도 강하고요. 교육 측면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한편 여미순 악장은 ‘대중’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들려줬다. 
“11년 전 ‘정오’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국악의 대중화’에서) 대중은 국악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국악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다 대중이라고 봅니다. 국악을 모르는 사람에겐 어떻게 접근할지, 국악을 깊이 있게 듣는 사람들에겐 또 어떤 걸 줘야 할지….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며 여러 시도를 하는 게 ‘대중화’가 아닐까요?”
권태연 위원은 ‘정오의 음악회’가 안착된 이후,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정오’의 의미를 어디에 둬야 할까. 입문자를 마니아로 만드는 것이 목표일까…. 그런데 그 간극이 너무 컸습니다. 실제로 ‘정오’를 통해 국악관현악 공연을 처음 접한 관객 중 묵직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정기연주회를 본 후 이탈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중간 단계’의 음악회를 만들어볼까 하는 시도도 오래도록 해봤는데,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깨달은 바는 ‘정오의 음악회’는 ‘정오’가 
좋아서 와서 즐기시는 관객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에요. 우리가 왜 굳이 이분들을 정기연주회로 이끌어야 하나, 그건 억지스럽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11년 전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대중화’됐다고 생각하는 점이라면, 관객들이 ‘정오’를 다른 장르의 공연과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보고 또 선택한다는 겁니다.”
홍지원 PD는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 그 ‘한 곡’이 필요하다고 했다.
“저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는데, 어느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강준일의 사물놀이 협주곡 ‘마당’을 듣고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내가 모르던 음악에 빠지게 되는 게 단 한 곡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경험을 저 스스로 한 바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국악 작품이 하나쯤 있고 또 그걸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게 된다면, 그게 바로 대중화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드리는 게 저희가 해야 할 일이고요.”
이번 특집 기사에 실을 사진을 고르기 위해 지난 11년, 총 98회 ‘정오의 음악회’ 공연 사진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포디엄에서 객석을 향해 몸을 돌리고 관객을 지휘하는 원일, 당장 남산 산책을 시작해도 좋을 색색의 편안한 옷차림으로 기립 박수를 치는 관객들, 그런 관객을 얼싸안고 노래하는 소리꾼 남상일, 두 팔을 활짝 펴고 열창하는 뮤지컬 가수 마이클 리와 그 뒤로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에 집중하는 단원들…. 그러다 2020년 사진 폴더에서 낯선 풍경이 등장한다. 마스크 쓴 안내직원의 방역에 협조하는, 역시 마스크를 쓴 관객, 관객의 눈이 아닌 카메라 모니터에 비친 김성진 예술감독, 텅 빈 객석을 향해 인사하는 이승훤 부지휘자와 단원들. 코로나19가 가져온 일상 속 어느 ‘정오’의 풍경이다.
그 어느 음악회보다도 관객과 함께 웃고 박수 치며 활발히 교감해 온 ‘정오의 음악회’이기에 무관중 비대면 공연이라는 형식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올해 들어 세 차례 ‘정오’를 순연했지만, 무관중 비대면 공연은 7월 딱 한 차례만 진행했다. 관객과 교감이 없는 연주는 메마를 수밖에 없다고 김성진 예술감독은 말한다. 여미순 악장은 무관중 공연 내내 긴장을 풀 여유가 없었다고 전하며, 관객이 박수 쳐줄 때 연주자들은 긴장을 풀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예술가는 관객을, 관객은 예술가를 기다린다. 이 생경한 풍경이 얼른 지나고, 다시 따뜻한 정오의 햇살이 이곳을 비추기를. ‘정오의 음악회’ 100회를 기다리는 모두의 마음이다. 

글 박용완 예중·예고에서 피아노를, 대학에서 영상학을 전공했다. 월간 ‘객석’ 편집장을 지내고 지금은 국립극장 홍보팀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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