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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6월호 Vol.365

하나를 빚어내는 힘

깊이보기 셋 | 연습실 엿보기

※국립극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수도권 지역 공공시설 운영 중단 결정에 따라 국립무용단 ‘제의’ 공연을 취소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www.ntok.go.kr/Community/BoardNotice/Details?articleId=194817

 


‘제의’가 다시 탄생하는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무용수들의 응집된 에너지로 가득한 뜰아래연습장을 찾았다

 

국립무용단 ‘제의’가 돌아온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제례의식에서 행해진 다양한 의식무를 소재로, 많은 것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집중한 공연이다. ‘제의’는 2015년 초연 당시 미니멀한 미장센과 몰입감으로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40여 명 무용수가 발산하는 거대한 에너지로 큰 사랑을 받았고, 매 시즌 국립무용단원들이 다시 선보이고 싶은 공연으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김미애 조안무는 “이 작품에도 독무나 이인무가 있지만, 누가 딱히 주인공이라 할 만한 게 없다. 무용수 다수가 움직임에 자신만의 고민을 담아내는 만큼 각자 존재감이 보이는 작품이란 면에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라고 언급했다.
지난 5월 8일 뜰아래연습장에서는 ‘제의’의 세 번째 전체 연습이 있었다. 공연을 앞두고도 코로나19로 개인 혹은 소수로만 연습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각자의 역할을 점검하는 방식으로 연습을 해왔고, 그걸 바탕으로 퍼즐 맞추듯 단체 연습을 이어가고 있었다. 단 사흘 사이에 단단히 정련된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하나로 몰아쳤다. 좁은 연습장이 47명 무용수가 내뿜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따로 또 같이 만들어낸 무대
‘제의’를 설명하는 중요한 열쇳말을 찾는다면, 그것은 ‘조화’다. 작품은 종묘제례의 일무, 불교의 바라춤과 나비춤, 민간신앙의 살풀이춤 등 결이 다른 춤들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조합하며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 정적인 움직임과 동적인 움직임이 교차하고, 서로 다른 속도와 강약에도 무대는 하나로 연결된다. 재즈의 스캣을 연상케 하는 작곡가 박우재의 음악 위로 살풀이춤이 더해지고, 삶과 죽음은 오로지 무용수들의 몸짓만으로 표현된다. 특히 ‘제의’는 다양한 군무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 사람의 움직임은 둘로, 넷으로, 서른으로, 다시 하나로 모이고 흩어진다. 각자의 춤인 듯 모두의 춤인 작품이 자연과 인간의 느슨한 연결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하다.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일무’는 주역의 64괘가 지닌 동양 사상과 8명이 8줄로 서서 64명이 올리는 종묘제례의 형식을 차용한 장면으로, ‘제의’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일무 장면을 만들 때만 해도 박자나 대형, 타이밍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한국춤은 사잇박과 곡선이 주를 이루면서 넘나드는 매력이 있으니까. 그런 춤을 줄곧 춰온 무용수 모두가 집중하며 서양의 박자를 맞추는 모습에 많이 놀랐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무용수들의 실력과 작품성을 통해 국립무용단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조안무 김미애)
초연 당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오른 ‘제의’는 이번에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LG아트센터는 해오름극장에 비해 무대의 크기가 작고,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도 가깝다. 넓은 무대가 무용수의 감정선이나 호흡을 전달하기 위해 에너지를 몇 배 더 쓴다면, 작은 무대는 디테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응집된 에너지가 훨씬 더 생동감 있게 객석에 전달되는 것은 물론이다. ‘제의’는 색상과 소품마저 최소화했기 때문에, 오로지 춤만으로 관객의 상상을 이끌어내고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 비움으로써 채우는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용수들의 에너지이며, 그러기에 더 중요해지는 것은 서로 다른 여러 무용수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호흡이다.
“이 작품은 정말 체력적으로 힘들다. 등퇴장이 별로 없고 움직임도 많아서인데, 마지막 장면쯤 가면 다들 힘들어서 눈이 풀리는 수준이 된다. 그때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질러주는 소리에 힘을 받아서 공연을 이어간 기억이 있다. 초연 때보다 나이도 더 들었고, 무대도 작아졌고, 시기도 시기인 만큼 격려하는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할 것 같다.”(조안무 송설)
김미애 역시 “동작을 맞추는 과정에서 마음이 모이고, 이 에너지가 동작으로 표현되는 아름다움이 있다. 공연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찰나는 반복될 수 없기 때문에, 현실로 돌아와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무대에서 다 쏟고 나오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왼) 조안무 김미애
(오) 조안무 송설

 

일상의 두려움 이겨내는 공연의 힘
서로 다른 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춤들이 모두 무언가를 기원하고 축원하는 의식무이기 때문이다. 작품 초반에 생김새도 체형도 모두 다른 무용수가 하나의 춤으로 거대한 집단미를 보여준다면, 중후반은 민속춤과 궁중무용인 춘앵무를 이용해 삶과 죽음의 윤회를 그린다. 두 사람은 초연 당시 이 장면에서 이인무로 호흡을 맞췄다. 다른 무용수의 이인무를 지켜보던 송설은 “과거에는 실제로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중후반은 한 여자가 제물로 바쳐지고 새로운 탄생이 오는 순간을 그린다. 초연 때 엄은진 단원이 실제 임신한 상태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환희에 찬 장면으로 끝나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춤을 추는 당사자가 아닌 상태로 한발 떨어져 그 장면을 바라보니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찡하게 다가온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김미애 역시 역할과 작품 모두를 ‘인연’으로 설명한다.
“모두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질 줄 몰랐다. 이 시기를 겪어내면서 환경오염에 대한 고민과 반성도 하게 되고, 안정을 간절히 바라게도 된다. ‘제의’는 작품 자체에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무용수들은 형식만을 가져가지 않는다. 뜻과 의미를 갖고 무대에 선 무용수들을 보며 작품 너머의 성찰로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코로나19로 당연하다 생각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자, 모두가 자기 안에서 생겨난 다양한 감정을 들여다보게 됐고, 김미애는 그것이 ‘초심’에서 나온 감사와 반성이라 말한다.
“가장 좋아하는 춤을 추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 받은 사람이란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 마음 하나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단련해야겠다 싶었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반면 송설은 공연이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더 잘 알게 됐다고 한다.
“연이은 공연 취소 소식에 속상해하는 분이 많았다. 온라인에서 상영된 ‘묵향’과 ‘향연’을 보며 이런 공연을 볼 수 있어 고맙다는 말을 하셨다. 상당히 놀라기도 했고, 공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느꼈다. 최선을 다해 무대에서 그간 쌓아온 노력을 다 뱉어내야겠다.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힘 받아 가시면 좋겠다.”
‘제의’를 보다 보면 한순간도 눈을 떼기가 어렵다. 서로가 다른 듯 같은 춤을 추기 때문이며, 오롯이 무용수만 비추는 조명 덕이기도 하다. 무용수들의 손을 보며 법고를 상상하고, 느리게 움직이는 다리에서 깊은 호흡을 함께 느낀다. ‘제의’는 서로의 안녕을 비는 의식이자, 여전히 공연이 일상에 필요한 이유를 증명하는 작품이다. 절망 끝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 공연예술 속 여성의 선택과 삶에 주목하는 월간지 ‘여덟 갈피’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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