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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호 Vol.358

전통과 사람, 자연을 품은 악기

전통 예술 기행┃호주 전통악기 ‘디저리두’

저 땅속 깊은 곳에서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디저리두’. 그 자연의 리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샌가 태곳적 신비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디저리두를 부는 호주 원주민

ⓒChameleonsEye

 

2011년 호주 브리즈번을 여행하다 우연히 길가에서 디저리두의 소리를 들었다. 그 묵직하고 파워풀한 소리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 태어나서 이런 소리를 내는 악기는 처음 접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후 디저리두 가게에 가서 악기를 구매하고 직접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웅장한 소리를 직접 내가 만들고 싶었다.
디저리두를 연주하면서 악기의 기원에 대해서도 깊게 파고들었다. 디저리두는 원래 호주의 아넘랜드에 거주하는 요릉우 부족이 제례 의식을 행할 때 부는 악기다. 요릉우 부족의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디저리두를 가까이하며 악기를 익힌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디저리두 연주에 유독 눈에 띄는 재능을 보이는 소년이 선발돼, 연주법과 제례 의식을 교육받은 후 본격적으로 디저리두를 연주한다. 요릉우 부족은 제례 의식에서 요릉우가 머무는 땅과 그 곁의 식물·동물·사람·영혼 그리고 조상의 지혜를 노래한다. 디저리두와 클랩스틱은 그 노래를 반주한다. 독주 악기로 사용하기보다, 노래와 춤에 곁들이는 앙상블 악기로 디저리두를 사용한 것이다. 남자 가수들이 노래하며 동시에 클랩스틱으로 리듬을 치는데, 주로 연륜 있고 부족 내에서 존경받는 남자가 리더를 맡는다. 그리고 대부분 젊은 남자들이 디저리두를 연주한다.

 

칼립투스 나무로 만드는 디저리두
디저리두는 마우스피스·벨·관으로 이뤄진 단순한 구조다. 마우스피스에 입술을 대면 소리가 나는 방식으로 연주한다. 보통 원통형이나 원뿔형이며, 길이가 약 1~1.5m로 긴 편이다. 일반적으로 길이가 길수록 음이 낮아진다.
그렇다면 디저리두는 어떻게 제작할까? 보통 흰개미가 속을 다 파놓아 파이프 형태가 된 유칼립투스 나무가 주재료다. 보통 나무의 줄기를 사용하지만, 악기의 크기에 따라 나뭇가지를 대신 쓰기도 한다고. 악기 제작자들은 흰개미가 주로 나타나는 지역에서 적절히 속이 빈 활엽수를 찾아 악기를 만든다. 최적의 재료를 고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악기 제작자는 목재를 찾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존경받는 디저리두 제작자이자 연주자인 데이비드 블라나시가 70대에 디저리두 제작에 필요한 나무를 찾아 숲으로 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적당한 나무를 고르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도 거친다. 도끼의 뭉툭한 날로 나무를 툭툭 쳐서 울림을 느껴보고, 나무껍질을 벗겨낸 후 그 안쪽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소리를 들어본다. 울림이 좋으면, 나무를 자르고 다듬기 전에 잘린 나무토막을 이용해 연주가 가능한지 확인한다. 그 후 나무껍질을 벗겨 겉을 세공하고 내부를 깨끗하게 다듬는다. 요즈음은 플라스틱·유리·금속·진흙 등 다양한 소재로 디저리두를 만든다. 디자인 또한 다채롭다. 슬라이딩 디저리두나 나선형 디저리두 등 여러 형태가 있다.

 

 

다채로운 디자인의 디저리두
ⓒFernan Archilla

 

디저리두로 맺어진 인연
좋은 소리는 자연스레 좋은 인연을 맺어주는 법. 디저리두 연주를 시작하면서 전 세계 관객, 디저리두 연주자와 마음을 터놓고 교류했던 시간은 늘 내 기억 속에 특별하게 자리한다. 음악적 파트너이자 친구인 요스케 이마오카도 디저리두로 알게 된 타악기 연주자다. 당시 호주에서 디저리두 버스킹을 하고 있을 때, 일본 전통복을 입은 한 남자가 연주하고 있는 나한테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며칠 뒤, 우연히 내가 머물고 있는 셰어 하우스에 그가 묵게 되며 디저리두에 대한 마음을 깊이 나눴다. 그 후 약 반년간 둘이서 디저리두를 연주하며 호주를 누볐고, 각자의 여행길을 떠났다가 2년 뒤 캐나다에서 만났다. 현재 그와 웨일스 애비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우리만의 디저리두 음색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둘이서 수년간 지구를 유유히 유영한 행보를 고래의 삶에 비유한 비공식 앨범 ‘드리프팅 아일랜드’를 제작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이탈리아에서 그와 함께 공연했다. 남이탈리아의 7월은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가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더웠다. 하지만 숨 막히는 열기 속에서 펼친 디저리두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관객으로부터 뜨거운 함성이 쏟아지고, 무사히 공연을 마친 후 우리 주변으로 관객이 몰려왔다.
사실 이 악기를 배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악기 연주의 핵심인 ‘순환 호흡’을 터득해야만 연주할 수 있는데, 이 순환 호흡이 처음엔 너무나 힘들었다. 먼저 요릉우 연주자들은 배에서부터 올라오는 공기를 터뜨리듯이, 숨을 짧게 끊어 내쉬는 방식으로 연주한다고 한다. 이때 디저리두의 저음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볼의 압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요릉우 출신이 아닌 대부분의 연주자는 순환 호흡으로 음을 낸다. 순환 호흡이란 코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동시에 입으로는 숨을 내뱉으며 볼 안에 머금은 공기를 내보내는 호흡법이다. 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연주 도중에 계속 숨을 쉬어야 하는 것이다.
디저리두를 같이 배우는 동료들은 대부분 일주일 안에 순환 호흡법을 터득했다. 그런데 나는 한 달이 넘어서야 겨우 호흡법을 익힐 수 있었다. 배우기 힘들었지만 남들보다 오래 걸린 만큼, 성공했을 때 짜릿한 성취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뿐인가. 원래 폐와 기관지가 좋지 않고 비염까지 있었는데, 순환 호흡을 하며 점차 호흡기관이 단련돼 건강해졌다. 디저리두를 불며 순환 호흡하는 순간, 몸이 저절로 평온해진다. 디저리두는 단순히 특색 있는 소리를 내는 도구가 아니라, 마음을 치유하는 악기인 것이다.

 

 디저리두를 부는 오늘날의 풍경 ⓒAlessio Catelli

 

 

세계 속 디저리두
디저리두는 지공이 없어 오직 호흡과 입술의 움직임으로 소리를 조절한다.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거나, 다른 악기 연주자가 연주할 때 기본적인 리듬을 낸다. 일반적으로 언어 패턴을 흉내 내 리듬을 연주하는데, 전 세계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언어를 바탕으로 디저리두를 불기 때문에 다채로운 소리가 난다. 언어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음이 무한대인 것이다.
오늘날 디저리두는 호주 원주민을 비롯해 지구촌 각양 각지에서 연주하는 악기로 자리매김했다. 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 유럽에서 매년 크고 작은 디저리두 페스티벌이 종종 열린다. 영국 밴드 자미로콰이의 앨범에 디저리두 소리가 실리기도 했다. 해외에 비하면 아직까지 한국의 디저리두 신Scene은 좁으나, 꾸준히 넓혀가는 추세다.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팀은 2~3팀이고, 국악이나 월드 뮤직에서도 조금씩 디저리두를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서 디저리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윈디시티의 전 멤버 신재원은 ‘잔치레게’라는 곡에서 디저리두 연주자로 활약해 흥을 돋웠다. 밴드 수리수리 마하수리에서 모로코 출신 음악인 오마르가 선율에 호주의 색채를 불어넣기도 했다. 디저리두에 관심이 있는 여러 아티스트가 늘어나며, 앞으로 우리 손끝에서 디저리두 음이 울려 퍼지길 바란다.


황병희 디저리두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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