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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호 Vol.358

굵은 핏대 선명히 보이도록 질러내는 강인한 통성

VIEW 프리뷰 3┃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김일구의 적벽가-박봉술제

 

격정적인 대목에서 소리를 질러낼 때 목에 굵은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소리 한 대목 한 대목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부르는지, 김일구 명창이 불러일으키는 정서 속으로 빠져 들어가 그 분위기를 함께 나누게 된다.

 

 

김일구 명창은 1940년 전남 화순에서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인 김동문은 타고난 소리꾼이었는데, 당시 목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안기선 명창으로부터 소리를 배웠다. 김 명창은 8~9세 되던 무렵 부친에게 소리를 배웠으며, 이웃에 살던 소리꾼에게 판소리 ‘춘향가’와 ‘흥부가’를 배웠다고 한다.
스무 살이 되던 1960년, 김 명창은 광주 호남국악원에서 활동 중이던 공대일 선생을 찾아가서 ‘흥부가’를 배웠다. 그러던 도중 변성기가 찾아오면서 판소리를 잠시 뒤로하고, 1962년 목포 유달국악원에서 활동하던 장월중선 명인을 찾아 아쟁산조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1968년 원옥화 선생에게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를 배웠다. 김 명창은 판소리의 대가이자 아쟁의 빼어난 명인이며, 가야금의 달인이기도 하다.
김 명창은 1970년대 전반에 이미 판소리 다섯바탕 중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를 모두 익혀 공연했다. 하지만 아직 배워서 익히지 않은 ‘적벽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리고 판소리의 이면을 제대로 구사하고 동편제의 특색을 확실하게 간직한 남자 명창에게서 ‘적벽가’를 배우겠다는 열망으로 찾은 스승이 바로 박봉술 명창이다. 사제지간의 연을 맺기 전에는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사이였던 박 명창의 전수생으로 입문해, 그의 서울 장위동 자택에서 기거하면서 소리를 익혔다. 타고난 음악성과 집중도 높은 학습의 영향으로, 김 명창은 빠른 시간에 ‘적벽가’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김 명창의 ‘적벽가’는 동편제 계보의 송만갑제로, 박 명창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다. 송만갑에서 박봉술로, 그리고 김일구로 이어지는 동편제 ‘적벽가’의 특징은 남성적이면서 맑고 호방한 우조를 적절히 사용하는 데 있다.
김 명창은 분명한 성음을 구사한다. 상청과 하청을 넘나드는 능력도 탁월하다. 힘차고 구성지게 고음을 처리하고 난 뒤에, 땅이 꺼지듯 무게 있게 내려놓는 저음의 대조가 특히 돋보인다. 김 명창의 ‘적벽가’는 유장할 때는 유장하고, 강할 때는 강하고, 호흡이 빠를 때는 정신없이 휘몰아치고, 처연한 장면에서는 한없이 슬프다. 영웅과 장수들의 세계를 그럴법하게 그려내기 위해 호령조가 많고, 소리의 시작을 진중하게 하며, 쇠망치로 내려치듯 강하게 맺어주는 것이 동편제 소리의 특징인데, 그 ‘적벽가’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바로 김 명창이다. ‘도원결의’라든지 ‘삼고초려’ 대목의 장엄함은 ‘적벽가’의 기본 골격이다. 빠른 호흡으로 한달음에 질러내는 ‘공명 동남풍 비는 대목’과 ‘자룡 활 쏘는 대목’, 그리고 ‘적벽강 불지르는 대목’은 자진모리장단으로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의 긴박한 장면 연출을 보여준다. 김 명창의 특장이 잘 드러나는 압도적인 대목이다. 이 대목들은 내용이 장황해 빠르게 몰아치면 가사 전달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김 명창은 마치 눈앞에서 불화살이 날아가 적벽강을 붉게 물들이듯 힘차면서도 가사 전달을 명확하게 한다. 그런가 하면 ‘군사설움타령’이나 ‘새타령’, 그리고 ‘조조군사점고’에서는 서민적 삶의 애환이 골계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서러운 정서로 표출된다. 이 때문에 ‘적벽가’는 진중하면서도 서정적이고, 격정적이면서도 고요한, 수많은 감정의 변화를 담고 있는,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듯한 변화무쌍한 판소리의 기교가 제대로 구사돼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김 명창은 동편제의 속성인 대마디 대장단의 특징을 제대로 유지하면서 기본 틀을 이끌어가지만, 진정한 김 명창 소리의 특징은 장단을 넘나들면서 변화를 주는 탁월한 엇붙임의 기교에 있다. 장단의 운용에 능해, 고수와 호흡을 함께하면서 장단을 타고 넘노는 품새가 빼어나다. 게다가 공연 현장의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사설을 가미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다. 관객이 예측할 수도 없게 펼쳐지는 즉흥성이 강한 무대야말로 김일구 ‘적벽가’의 한 축이다. 희로애락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섬세함과 박진감을 교차시키며, 능수능란하게 청중의 가슴을 뒤흔들어놓는 솜씨는 김 명창과 함께 호흡하면서 즐기게 한다.
김 명창의 박봉술제 ‘적벽가’에서 북 반주는 명고수 김청만 선생과 이태백 선생이 맡는다. 김청만 명고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로서, 소리꾼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화려한 기교가 특히 돋보인다. 이태백 명고는 아쟁 명인이자 남도음악의 가장 빼어난 리더이기도 하다.


유영대 고려대학교 교수.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을 지냈으며, 현재 무형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김일구의 적벽가-박봉술제’
날짜 2019년 11월 23일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관람료 전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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