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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Vol.356

국립창극단 민은경

VIEW┃예술가의 초상


‘화선 김홍도’의 소년 김홍도, ‘서편제’의 어린 송화, ‘심청가’의 어린 심청. 아담한 체구와 앳된 얼굴로 ‘어린 OO’을 도맡고 있지만, 국립창극단의 ‘작은 거인’ 민은경은 어느덧 30대 중반. 어린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는 중견 소리꾼이 됐다. 2년 전 소리꾼에게는 꿈의 무대라는 ‘완창판소리’ 공연도 올렸지만, 정작 본인은 “난 아직 꼬꼬마”라며 손사래를 친다.

 

 


“2주 동안 산 공부 다녀왔어요. 지난 토요일에 나왔죠.”
8월 초 만난 민은경은 ‘춘향가’ 완창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2014년 국립극장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의 공연을 앞두고 김성녀 전 예술감독과 함께 만났을 때보다 몰라보게 세련돼 있었다. 당시 대학 은사인 김성녀 앞에서 소녀처럼 조심스럽던 모습은 간데없고, 멋스러운 헤어스타일에 패셔너블한 차림으로 시종 당당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연습실이 없으면 처마 밑에서 소리하는 악바리”라던 스승의 평가는 지금도 유효해 보였다. 7월 20일 방송된 KBS ‘불후의 명곡’ 출연으로 상당한 화제를 모았지만, 곧바로 산으로 들어갔다.
“지금 제 ‘춘향가’는 대학교 때 이수한 소리거든요. 아직 덜 닦인 부분이 있죠. 이수한 소리라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다시 2년쯤 걸리는데, 그래서 요즘은 온통 ‘춘향가’ 생각뿐이에요.”
‘춘향가’ 이수자이지만 사실 ‘심청가’와 더 인연이 깊다. 2년 전 ‘완창판소리’ 때도 강산제 ‘심청가’를 불렀고, 국립창극단 최근 공연에서도 ‘심청가’의 어린 심청 역이었다. 당시 부녀지간으로 나온 후배 유태평양과는 ‘불후의 명곡’에서 인순이의 ‘아버지’에 ‘심청가’를 더한 무대를 선보여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관객 중에 ‘심청가’도 보러 오셨던 분들이 계신데, 깜짝 놀랐다고 하시더군요. 창극과 대중음악을 접목한 무대가 무척 신선했다고들 하세요. 국악인이 많이 출연했지만 그런 무대는 처음이었다고 높이 평가해주셔서 즐거웠어요.”
국립창극단은 올해도 어김없이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공연한다. 이번 공연에서도 민은경은 의녀 역을 맡았다. 이미 여러 차례 관람한 터라 ‘또?’라는 마음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민은경의 이야기를 들으니 오랜만에 ‘옹녀’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사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이야기 자체는 지금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연출적으로 아주 잘 풀어낸 것 같아요. 해학적인 전개로 관객의 웃음 포인트를 정확히 살리면서도 옹녀의 삶이 서글픈 느낌도 들게 하죠. 웃긴데 왜 슬프지? 하는 감정 때문에 관객이 더 많이 좋아하는 것 같고요. 작창도 아주 잘 짜였죠.”
개인적으로 의녀만큼 독특하고 코믹한 캐릭터 경험도 전무후무하다. ‘심청가’의 심청, ‘아비. 방연’의 단종 등 늘 ‘울거나 맞거나 죽는’ 역할을 도맡아온 입장에서 의녀는 딱 한 장면 등장하는 작은 비중이지만 귀한 역할이다.
“비중이 크진 않지만, 정말 열심히 해야 하는 역이에요. 의녀로서 권위 있어 보여야 하니 15센티미터 굽의 구두를 신는데, 그걸 신고 뛰고 춤추고 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죠. 소리는 ‘수궁가’ 일부를 모티프 삼아 작창된 건데, 자진모리 장단의 빠른 템포로 휘몰아치면서 거의 랩을 해야 하죠. 딱 한 장면으로 힘 있게 내용을 전달해야 하니, 더 긴장하게 되고요. 게다가 굉장히 진지하지만 코믹해야 된다는 연출님의 요구도 있었어요. 워낙 재밌는 장면이라 가끔 웃음 참는 것도 고역이에요. 작년에 무대서 제대로 터진 적이 있었죠. 작은 실수가 나와 악사, 배우 모두 이를 악물고 참는 모습에 오히려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더군요.(웃음)”

 

 

 

“지금 내 관심사는 온통 ‘춘향가’”
2013년 입단했지만 국립창극단과의 인연은 훨씬 오래됐다. 2006년 창극 ‘십오세나 십육세 처녀’ 오디션에 붙어 심청 역으로 신고식을 치렀고, 이후 두 차례 인턴 단원을 거쳐 7년 만에 정단원이 된 것이다. 국립창극단이 10년 만에 뽑은 신입 단원이었다. 입단과 동시에 7년 동안 국립창극단의 부단한 실험 현장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론 입단 후 첫 작품인 ‘서편제’(2013)를 꼽는다.
“2010년에 뮤지컬 ‘서편제’를 먼저 경험하면서 창극으로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게 입단과 동시에 실현된 거죠. 아무래도 소리보다 뮤지컬 넘버가 많으니 소리꾼으로서 갈증을 느꼈었거든요. 좋은 경험이긴 했죠. 뮤지컬 관객들이 창극으로 옮겨오기도 했고요. 창극 ‘서편제’는 극 전체가 소리로 채워졌지만, 양방언 음악감독님의 음악이 잘 맞아떨어져서 일반 관객도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서편제’의 송화만큼은 아니지만, 민은경의 소리 인생에도 아버지의 영향이 지대했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집에서 혼자 아코디언·기타·신시사이저를 연주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당신이 못 이룬 꿈을 그에게 투영한 것이다.
“어릴 때 제가 목통이 커서 갖다 버리고 싶을 정도였대요. 너무 크게 울어서 부엌에 가둬놓았다나요.(웃음) 초등학교 때 동요 대회도 나가고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긴 했어요. 사실 어린 마음에 피아노나 노래를 배우고 싶었는데, 아빠가 판소리를 하라고 딱 정하셨죠.”
아버지가 정해준 대로, 초등 5학년 때 지방문화재 안애란 선생 밑에서 소리를 시작했다. “시작은 반강제였지만, 좋아서 아직까지 하고 있다”라는 게 그의 말이다.
“소리꾼들이 산에 들어가 합숙하며 훈련하는 게 있는데, 그걸 ‘산 공부’라고 해요. 초등학교 때부터 산 공부를 하러 다녔죠. 한창 놀 나이인데, 방학마다 한 달 내내 산에 머물러야 했어요. 어린 마음에 소리는 안 하고 계곡 물에서 놀고, 슈퍼마켓으로 나와 과자 사 먹고 그러기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대학 때까지 ‘방학=산’이었네요.”
그렇다고 오직 판소리만 바라본 건 아니다. 길거리 가요제에도 나가고, 연예 기획사 JYP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영상을 보내 1차에 합격했는데, 2차 오디션이 공연이랑 겹쳐서 포기하기도 했죠. 가요나 팝도 좋아해서 20대 초반엔 퓨전 활동을 하면서 음반도 냈어요. 선생님들이 걱정도 많이 하셨지만, 그때 다양한 음악의 리듬꼴을 들었던 게 지금까지 도움이 됐어요.”
마당놀이?퓨전 공연 등, 입단 전 다방면으로 활동한 경험은 완창 무대에도 보탬이 됐다. 4~5시간을 혼자 끌어가는 완창에 대해 민은경만의 색다른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몇 년간 완창에 대해 고민했어요. 좀 색다른 완창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이야기를 소리·아니리·너름새로 잘 그려내, 더 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거죠. 소리를 어렵게 생각하던 사람도 오히려 완창을 듣고 더 좋아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다양한 경험이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됐어요.”
민은경은 ‘만성 열심병 환자’다. 대학 입학 후 지금까지 부모님께 경제적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 활동해왔다.
“워낙 가만히 있지 못하는 스타일이긴 해요. 제가 늦둥이라 아버지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혼자 해내려는 강박도 있었어요. 학생 때부터 공연 기회를 열심히 찾아다녔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죠.”
하지만 이제 좀 내려놓았다는 고백이다. ‘열심병’에도 힐링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요새는 너무 많은 걸 하지 않으려고도 해요. 대신 필라테스랑 요가 등 운동을 하면서 얻는 게 많네요. 그간 너무 나를 가혹하게 혹사시킨 것 같아요. 오랫동안 혼자서 소리와의 싸움을 해왔거든요. 그 결과 상도 많이 받고 지금까지 왔지만, 모든 걸 혼자 하다 보니 과부하가 걸렸달까요. 요가까지 너무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요가 선생님이 ‘은경님 너무 열심히 안 하셔도 돼요’라고 하시더군요. ‘몸을 보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겠다, 하다 보면 언젠간 되니 너무 열심히 할 필요 없다’고요. 일도 그런 것 같아요. 이젠 조금은 내려놓고, 나를 더 바라보면서 내가 왜 이걸 열심히 하려 하는지 생각하면서 하고 있죠. 내려놓으니 마음이 좀 편해진 상태예요.”
‘열심병’을 극복했다지만 민은경은 여전히 분주하다. 완창을 준비하느라 소리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면서도 외부 활동도 열심이다. ‘불후의 명곡’ 이후 외부 섭외도 부쩍 늘었다. 얼마 전에도 김준수·유태평양과 공주에서 열린 제1회 국악재즈페스티벌 무대에도 섰다. 이번 시즌 국립창극단은 국립극장 70주년 기념 공연으로 ‘춘향전’(가제)을 공연할 예정이다. 국립극장장을 지낸 김명곤 연출로 내년 5월 오랜만에 전통에 충실한 창극을 선보인다.
“아마도 관객이 이번 춘향을 가장 기다릴 것 같아요.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춘향가’를 오랜만에 선보이게 됐는데, 그간 기다려온 관객도 많지만 지난 7년간 창극 관객층이 두터워지면서 이제는 그들에게 전통 공연을 보여줄 때가 왔다 생각해요. 지금껏 다양한 창극을 경험해봤기에 제대로 된 전통도 느껴볼 만하다 생각해요.”
때마침 지금 민은경의 개인적 화두도 ‘춘향가’다. 두 번째 완창 도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승 성우향 선생님 음원을 계속 듣고 있어요. 오랜만에 선생님 소리를 들으니 새삼 명창이라면 이래야 한다 싶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이토록 소리를 잘하셨나 싶고. 내년 창극 ‘춘향전’(가제)에 꼭 참여하고 싶네요. 꼭 춘향 역할이 아니더라도요.(웃음) 그래서 ‘춘향가’를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민은경의 ‘열심병’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유주현 ‘중앙SUNDAY’공연 담당 기자.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진 人, The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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