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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Vol.356

2019 국립극장 여우樂락 페스티벌

VIEW 리뷰┃여전히 우리 음악의 최전선, 여우樂락

 

9년 전 여우락이 출발할 때만 해도 우리는 우리 음악에 대해 다분히 무심했다. 그 당시 캐치프레이즈가 ‘우리도 몰랐던 세계 속 우리 음악’이었던 것만 봐도. 여우락은 우리 음악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걸 나누길 바랐으며, 9년 동안 쉬지 않고 노력했다. ‘여우락’이라는 브랜드가 쌓아온 우리 음악의 현재. 그 현재를 다시 발견한 무대였다.
2019년 7월 10~14일 |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10주년을 맞은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은 공연 횟수를 줄인 대신 밀도와 속도를 끌어올린 축제로 기억될 듯하다. 그간의 행보를 갈무리하고 숨을 고른다는 의미에 우리 음악이 여기까지 왔다는 넘치는 자신감을 더한 셈이다. 역대 예술감독인 양방언·나윤선·원일이 기획한 세 개의 무대는 드림팀·올스타전·슈퍼그룹을 화두로 각계의 정상급 연주자들이 올림픽 계주 결승처럼 치열한 질주감의 무대를 선보였다. 마지막 날 펼친 폐막 공연도 예외가 아니었다.

 

 

새로운 미감을 향한 양방언의 도정
첫날 무대를 채운 양방언의 ‘여우락 드림 오케스트라’는 과연 양방언만이 펼쳐낼 수 있는 스케일을 보여줬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기반으로 박력과 부드러움을 양날의 검처럼 겸비한 특유의 음악 세계 말이다. 한일 양국 베테랑 연주자들의 각양각색 개성, 그것을 조율하고 지휘해내는 역량을 재일한국인 감독으로서 유감없이 보여줬다. 타악(장재효), 대금과 소금(한충은), 태평소와 피리(박세라) 같은 국악기군이, 드럼(오카모토 겐타), 베이스 기타(무라타 다카유키), 기타(스즈키 히데토시), 바이올린과 얼후(쓰치야 레이코), 색소폰(데라치 미호) 같은 각기 다른 색깔의 악기들과 맞물려 내는 음색은 그 편제만큼이나 다른 곳에선 감상하기 힘든 무대였다.
이날 서곡으로 준비한 ‘No Boundary’는 과히 제목처럼 선언적이었다. 무대 중심의 그랜드피아노에 앉아 9명의 연주를 아우르던 양방언은 드럼 간주 때 떨쳐 일어나 전면으로 걸어 나왔다. 모니터 스피커에 한 발을 올리고 박수를 유도하는 모습은 여우락이 아닌 대형 야외 록 페스티벌에 출연한 록 스타를 연상시켰다.
앙코르로 감춰둘 법한 ‘아리랑’을 두 번째 순서에 분출한 것도 과감했다. 서주의 주선율을 베이스 기타로 전개한 것도 신선했는데 이어달리기하듯 이를 대금·피리·얼후·베이스 기타·색소폰이 차례로 받아냈다. 아리랑의 잠재력과 새로운 미감을 계속해 탐험하는 양방언의 도정道程을 엿봤다.
솔로를 포함한 악기 각각의 연주가 빛났다. 특히 이질적인 악기들을 도톰한 저음으로 아우르는 베이스 기타의 음색, 베이시스트 무라타 다카유키의 스타성을 활용한 것이 공연 내내 여기저기서 돋보였다. 자칫 묻힐 수 있는 악기에 되레 중역을 맡긴 것이다.
‘Mint Academy’에서도 베이스 기타는 서주로 견인차 역할을 했다. 플루트·소금·바이올린·태평소가 이루는 앙상블 역시 독특했다.
레퍼토리는 양방언 솔로 앨범의 대표곡들, 각종 국제 행사 음악, 애니메이션 주제가 등으로 폭넓었다. 전반부의 하이라이트는 ‘Echoes for 평창’ ‘Who I AM’ ‘Flowers of K’ 메들리.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음악과 2020 도쿄 패럴림픽 다큐멘터리 음악, 자신의 대표곡을 꿰어냈다. ‘Who I AM’은 이번 공연을 위해 맞춤 편집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화면과 악곡의 흐름이 드라마틱하게 맞아떨어졌다. 장애를 가진 선수들의 노력과 도전을 점묘한 감동적 영상이 무대 위 연주의 질감과 질주감에 철컹철컹 포개질 때마다 듣는 이의 감정을 고양시켰다.
양방언과 그의 이색 오케스트라는 아리랑을 공연의 적재적소에 꽂아 넣어 변주했다. 중반부에는 올해 초 방영된 KBS 1TV 다큐멘터리 ‘아리랑로드’의 음악을 들려줬다. 상반기에 국악 관현악에 기반한 자신의 첫 교향곡 ‘아리랑로드-디아스포라’로 풀어냈던 것을 이번에 양방언은 9인조 드림 오케스트라에 맞춘 또 다른 색깔로 펼쳤다.
2013년 제주 해녀박물관에서 헌정한 ‘해녀의 노래’도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하게 새 단장했다. 해녀들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든 선율에 뜻밖에 펑크와 리듬앤드블루스풍 편곡을 얹어 이채로운 맛을 냈다. 앙코르의 ‘정선아리랑’ ‘In Our Hands’에 이르기까지, 때로 권송희의 노래까지 얹은 10인의 호흡은 숨 쉴 틈, 물샐 틈 없이 이어졌다. 동서양, 국악과 양악을 포용하는 양방언의 종횡사해는 이번에도 역시 무대 바깥으로 흘러넘쳤다.

 

 

나윤선 없이도, 나윤선을 느낄 수 있었던 무대
이아람과 죠슬렝 미에니엘의 ‘after Wood & Steel’은 리턴 매치였다. 2015년 이후 4년 만에 동서양 관악기 솔리스트로서 두 사람이 다시 부딪친 경기. 초장은 미에니엘이 압도했다. 빠른 오스티나토에 거친 숨과 스타카토를 더해 플루트를 마치 타악기처럼 활용하던 그는 루프 스테이션과 이펙터, 자신의 몸까지 활용하면서 관악기의 경계를 묘기처럼 넘나들었다. 영국 록밴드 제스로 툴의 이언 앤더슨과 세계적 보컬리스트 바비 맥퍼린이 한 몸에 빙의돼 영토 전쟁을 벌이는 느낌쯤 될까.
이아람도 만만치 않았다. 앞서 달려가는 플루트의 폭주를 따라잡아 뒤엉키는 호랑이처럼 대금의 한계를 흩트리고 무색하게 했다. 그간 ‘나무’ ‘블랙스트링’ 멤버로 활동하며 다양한 월드뮤직의 범주를 주유한 그의 세계는 확연히 넓어져 있었다.
평소 록·힙합·전자음악을 주로 무대에 올리는 소규모 클럽형 공연장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가 주는 분위기도 이색적이었다. 박은혜 무대 디자이너가 맡은 그래피티도 한몫했다. ‘YEOWOO RAK’ 같은 여러 글귀가 자유분방한 필체로 벽을 장식했는데 미국 뉴욕의 골목처럼 다양한 문화가 눈치 안 보고 섞이는 시공간이 바로 여우락임을 꽤 파격적으로 표현해냈다.
재즈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원술(베이스 기타)과 이아람과 오랜시간 호흡을 맞춰온 황민왕(타악·구음)의 리듬 섹션은 독특한 골조로 두 관악주자의 줄타기를 받쳐냈다. 베이스의 활 연주와 베이스 플루트가 이뤄내는 앙상블, 칼림바와 정주가 교차하는 입체감이 공연에 색채를 더했다. 김보라(구음)의 스캣은 나윤선 없는 ‘나윤선의 여우락’에 또 다른 나윤선을 참가시켰다고 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정가·민요·재즈 또는 그 사이를 넘나들며 악기가 닿지 못하는 구석구석을 속 시원하게 긁어줬다. ‘after Wood & Steel’은 우리 음악의 변주가 젊은이들의 클럽 문화까지 충분히 파고들 수 있음을 보여준 실험장이었다.

 

 

여우락을 질주한 원일과 아해들
양방언의 무대가 햇살 가득 받은 초록의 드넓은 평원을 연상시켰다면 원일의 무대는 완벽한 대척점에 있었다. 다른 날 같은 무대를 채운 원일과 ‘13인의 달아나 밴드’는 명도와 채도는 물론이고 질감도 칠흑이나 진흙을 연상시켰다. 공연을 준비할 때부터 우리식 하드록의 질주를 보여주겠다고 호언한 원일은 스크린에 심야 도로를 질주하는 차의
1인칭 시점 동영상을 깔았다. 데이비드 린치가 연출을 맡고 안젤로 바달라멘티, 트렌트 레즈너가 음악을 담당한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가 떠오르는 이미지다. 이상의 ‘오감도’를 주술처럼 암송하는 가운데 연주자들이 하나둘씩 그림자를 드러냈다.
박경소(가야금)·박지하(생황·양금)·원나경(해금)·윤서경(아쟁)으로 이뤄진 국악기 군단은 우리 음악으로 밴드의 무게 중심을 잡았고, 원일은 사운드 메이킹?DJ?보컬?타악 등으로도 출연하며 다방면에서 위용을 떨쳤다. 특히 박지하의 생황과 양금은 악기가 가진 특징처럼 동서양을 아우르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양금의 느리고 영롱한 분산화음은 뜨겁고 음산한 질주를 잠시 식혀주는 가랑비 같았다.
원일의 하드록 밴드는 개개인의 꿈틀대는 개성에 많은 자율권을 부여한 듯했다. 특히 무대 전면을 장악한 세 명의 보컬리스트는 고삐가 있더라도 틀어쥐기 힘들었을 법한 오라aura를 뿜었다. 파격적 의상과 퍼포먼스로 괴짜적 기질을 만방에 알린 이희문(민요),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뒤 재즈로 전향해 무시무시한 스캣을 들려주는 보컬 전송이. 쪽 찐 머리에 단아한 한복 차림의 강권순(정가)은 한국적 하드록의 포효로 반전 공포를 선사했다. 10분여에 달한 달아나 모음곡에서 황병기의 ‘미궁’ 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음산한 웃음소리까지 더해지니 이날은 납량특집이려니 싶었다. 특히 길군악에서 강권순의 절창은 스포트라이트 하나만 빼고 다른 무대 조명을 다 꺼뜨려버리려는 듯한 파괴력을 발했다. 박범태·임용주·한웅원에 때로 원일이 가세한 타악기 군단은 역동성을 더했다.

 

‘여우락’이라는 브랜드, 미쁨에 보답한 피날레
대미를 장식한 옴니버스 공연, ‘열열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는 앞선 공연에서 집약됐던 에너지를 다시 풀어헤쳐 내는 의식 같았다. 첫 무대를 장식한 월드뮤직 그룹 ‘공명’은 목가적인 곡 ‘바위손’으로 시작해 신곡 ‘Present’ ‘춤추는 파도’까지 특유의 기를 발산했다. 하상철 작가의 오디오 비주얼 퍼포먼스를 더해 청천벽력 같은 에너지를 분출하다가도, 때로 독일 베를린의 실험실에 온 듯한 몽환성을 흩뿌리기도 했다.
두 번째 무대의 주인공 ‘두번째달’은 공연의 중간을 부드러운 완충지대로 만들었다. 특유의 아일랜드 민요풍을 기반으로 탄탄한 앙상블을 들려줬으며, 소리꾼 김준수·하윤주·채수현이 각각 판소리·정가·민요를 더해 며칠간 질주와 실험으로 달려온 관객에게 쉼터 같은 선율을 나눠줬다.
종장을 맡은 ‘유희스카’는 말 그대로 유희의 여흥으로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주로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 클럽이나 야외 페스티벌을 누비던 스카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와 연희컴퍼니 유희가 만나 이뤄낸 독창적인 슈퍼 그룹. 악기도 그루브도 다른 15명의 연주자가 이뤄내는 다소 독특한 합은 리듬과 장단의 새 마당으로 청자들을 이끌었다.
열 해를 마무리한 여우락은 이제 새로운 1회를 향해 간다. 지금껏 우리 음악이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장을 첩첩이 열어젖혔던 과거는 이번에 종합했으니 기록하되 잠시 잊는 것도 좋겠다. 11회는 ‘여우락 시즌2’의 시작이다. 이미 검증된 연주자와 연주 단체 말고 새로운 얼굴을 찾아나서는 것도 좋은 길이 될 수 있겠다. 벌써 내년 7월이 기다려진다.
 
임희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매주 라디오에 출연해 랩을 한다. 매년 여우락 페스티벌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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