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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7월호 Vol.354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소리 찾기'

리뷰┃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Ⅳ '내셔널&인터내셔널'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김성진호를 타고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24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축적된 노하우와 연주자들의 기량이 더해져

국악 관현악단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역동적인 에너지로 소리의 재발견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2019년 6월 11일 | 롯데콘서트홀

 

 

김성진호 항해의 시작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이번 공연은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롯데콘서트홀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이 밖으로 나온 것은 해오름극장 리모델링이라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지만 그 외출은 꽤나 성공적으로 보인다. 작년에 남북한의 민족음악을 연주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II ‘다시 만난 아리랑-엇갈린 운명, 새로운 시작’(2018. 11. 22)과 관현악시리즈III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Into the Light’(2019. 3. 21)가 뜨거운 관심 속에, 같은 장소에서 공연한 바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IV가 지난 6월 11일 또다시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올랐다. 지난 4월 부임한 김성진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내셔널&인터내셔널’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풀었다. 이 주제는 ‘국제적인 시각에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을 통해 국악 관현악의 정수를 보여준다’라는 목표에 맞춰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3인의 작곡가 임준희·김대성·강준일 그리고 중국 작곡가 탕젠핑唐建平·미국 작곡가 토머스 오즈번(Thomas Osborne)의 곡이 김성진호의 출발을 알렸다. 김성진 예술감독은 기존 작품 중에서 네 곡을 선택하고 한 곡을 위촉해 이번 공연을 꾸렸다. 선곡에서 연주로 이어지는 기간이 지극히 짧았던 것에 비해 그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첫 곡으로 무대에 오른 임준희의 국악 관현악 ‘심향(心香)’은 지난해 9월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I ‘2018 마스터피스-황병기’ 공연에서 위촉·초연된 곡이다. 황병기의 대표적인 가야금 독주곡 ‘침향무’를 오마주해 ‘침향무’가 머금고 있는 빛깔과 섬세한 향기, 곡의 영성 등이 마음의 향기心香가 돼 퍼질 수 있도록 구사했다. ‘오마주(Hommage)’란 감사와 존경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존경하는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곡은 작곡가 임준희가 황병기 명인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곡이다. 초연에서 황병기의 침향이 군더더기 없이 드리워졌다고 한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한층 보강된 음향으로 ‘침향’이 ‘심향’으로 마음 깊숙이 침투해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


두 번째 곡은 탕젠핑의 비파 협주곡 ‘춘추(春秋)’다. 1994년에 작곡돼 이미 중국에서 비파 협주곡으로 흔들림 없는 위상을 확보한 곡이다. 뮤지컬·드라마·연극·창극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작곡가 홍정의가 편곡했다. 국악 관현악 편곡 버전으로는 이번 무대가 초연인 셈이다. 우리 악기로 편곡했지만 중국적인 음향이 잘 살아 있어 탕젠핑의 오라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비파 협연은 중국 중앙음악학원에서 비파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식과 연주력을 인정받은 비파 연주자 위위안춘(于源春)이 맡았다. 젊은 나이지만 미국의 카네기홀을 비롯해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등에서 비파의 매력을 알린 전력이 있는 만큼, 그녀의 연주는 관객을 사로잡았다. 연주를 마친 후 객석에서는 거의 3분 가까이 박수가 이어졌고 관객은 비파 연주자 위위안춘에게 충분한 예의를 갖추었다.

 

세 번째 곡은 김대성의 국악 관현악 ‘금잔디’이다. ‘금잔디’는 월북 작곡가 리건우가 김소월의 시에 붙인 가곡 ‘금잔디’의 서정적 선율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단을 입혀 역동적으로 만든 곡이다. 리건우의 ‘금잔디’ 선율은 다양한 모습으로 반복됐으며 선율적·리듬적 변주가 이뤄져 짜임새 있는 음악이 됐다. 특히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선율이 잘 드러나도록 만들어 오래도록 귓전에 남는다. 김대성은 오케스트레이션과 음향의 속성뿐 아니라 장단 이해도가 높아 리듬 구사가 탁월하다. 이 곡은 공연 끝부분에서 앙코르 곡으로 다시 한번 연주됐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신명이 잘 드러난 연주였다.


네 번째 곡은 강준일의 국악 관현악과 해금,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 협주곡 ‘소리그림자 No.2’이다. 정수년(해금)과 이경선(바이올린)이 협연자로 참여했다. 두 연주자 모두 정상을 달리는 실력파이기에 어울림에 기대가 컸다. 역할론적인 측면에서 국악기인 해금과 서양 악기인 바이올린은 흔히 비교되는 악기이다. 특히 해금의 소리가 작아 두 악기의 어울림이 어떨까 내심 걱정했지만 이는 기우였다. 음향 장치의 도움도 있었지만 때로는 경합하듯이, 때로는 대화하듯이 두 연주자가 이끄는 당당한 선율은 곡의 흐름을 주도했고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하는 해금·바이올린의 위상은 추후 유사한 방식의 작품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했다.

 

마지막 곡은 토머스 오즈번의 국악 관현악 ‘Haru(하루)’이다. ‘해 뜨는 아침’ ‘한낮의 폭풍우’ ‘황혼’ ‘보름달’의 4악장으로 구성된 곡이다. 토머스 오즈번은 미국 작곡가지만 한국 악기가 낼 수 있는 음향을 잘 이해해 매력적인 사운드를 창출해냈다. 1악장에서 사용한 정주와 찰현악기인 해금·아쟁이 곡의 중심을 잡았다. 2악장에서 소리북을 사용하는 방식 역시 탁월했다. 3악장에서 거문고 술대로 긁는 음향이라든지 금속 타악기를 금속의 채로 치도록 구사해 기본 음향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신선했다. 4악장의 ‘보름달’은 기존의 곡보다 더욱 풍성한 음향으로 보충해 곡의 충실도를 높였다.

 

‘국악 관현악 사운드’의 새로운 발견
‘소리’라는 화두를 띄워두고 국악 관현악단의 음악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국악 관현악단을 이야기하면서 매우 오랫동안 조율·음향·음량·악기개량의 문제, 그리고 전용 공간의 필요성 등 다양한 각도에서 저마다 층위가 다른 여러 주장을 내왔다. 그러나 이번 공연을 보면서 국악 관현악단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다. 이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롯데콘서트홀이라는 공간과 조우했고, 김성진이라는 지휘자와 조화를 이루었기에 갖게 된 생각이기도 하며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만들어낸 소리로 확인한 새로운 가능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1995년에 창단됐고 창단 이후 24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며 그동안 연주자들의 기량은 지속적으로 향상돼 ‘그들만의’ 빛깔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는 이들이 연주하는 새로운 곡에서 뿜어낼 소리가 어떤 음향으로 드러날지 궁금한 단계에 이르렀다.


한동안 국악 관현악단도 서양의 오케스트라와 같은 정제된 소리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기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국악 관현악단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역동적이고 출렁이는 에너지, 바로 그런 소리의 재발견이 안팎에서 이뤄지고 있다. 거문고의 둔탁한 소리, 대금과 피리가 내는 출렁이는 음정, 출렁이므로 낼 수 있는 역동적인 효과 등. 그것을 충실하게 드러내며 찾아가는 앙상블이 재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악기 간 음량의 조화와 어울림, 세밀한 악기의 표현과 앙상블을 찾아가는 것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악 관현악이 반드시 서양 오케스트라를 이상적 전형으로 둘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제 국악 관현악은 ‘국악 관현악다운’ 소리를 찾아가면 될 것이다.


이번 공연은 음향 장치 활용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최종 목표는 최적화된 공간에서 음향 장치에 의지하지 않고 악기의 자연스러운 사운드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단계에 두어야 할 것이다. 국악 관현악단의 사운드는 이제 ‘새로운 음향의 발견’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표준화된 서양 관현악단에 비할 때 국악 관현악단의 소리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싫증나지 않는 소리’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우리 악기의 역동성을 발견한 귀 좋은 이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발견일 것이다.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 하나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도스토옙스키 평전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전통은 현재를 위한 과거의 확고한 한계로서, 미래로 나아가려는 자는 이를 넘어서야 한다.” 이제 막 항해를 시작한 김성진호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미래로 나아가려는 자는 전통을 넘어서야 한다. 전통은 발목 잡히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작동돼야 한다. 본성은 새로운 질서를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자만을 사랑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새로운 질서를 위해 자신을 파괴하고, 그것으로 까다로운 관객의 사랑을 획득하길 바란다. 선장 김성진이 그 역할을 섬세하게 해나갈 것으로 믿는다.

 

송지원 음악학자.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음악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사람과 학문의 건강한 소통을 모색하고 있다. 국악FM방송에서 ‘연구의 현장’을 진행하면서 음악의 인문학적 지평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조의 음악정책’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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