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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호 Vol.352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세계무대┃오프닝 도어즈 페스티벌

2년에 한 번, 3월 중 일주일. 영국의 평범하고 조용한 해안 도시가 북적인다.

‘오프닝 도어즈 페스티벌’, 평범한 도시의 이유 있는 변신을 주도한 주인공이다.


현지인들에게 ‘애버(Aber)’로 알려진 애버리스트위스(Aberystwyth)는 영국 웨일스의 서부 해안에 자리 잡은 대학도시다. 인구 20만 명이 채 안 되는 이 조용한 휴양 도시는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물들이 늘어선 아름다운 해변 산책로와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으로 매년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조용하고 평범했던 해안 도시에 ‘아고르 도르사이 오프닝 도어즈 페스티벌(Agor Drysau Opening Doors Festival)’(이하 오프닝 도어즈 페스티벌)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오프닝 도어즈 페스티벌’은 웨일스의 유일한 국제 아동청소년 공연예술 축제다. 웨일스 예술인들과 지역 커뮤니티가 협력해 만들어낸 이 축제는 지역은 물론 전 세계 어린이·청소년 공연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마을에 전과는 다른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올해 아홉번째 행사가 열렸는데, 격년에 한 번씩 3월 중순 무렵에 애버리스트위스 전역에서 일주일간 펼쳐진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세계 우수 공연은 물론 야외 행사·워크숍·세미나 등으로 가득한 이 축제는 학교 및 가족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와 저녁 부대행사 등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를 위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올해 오프닝 도어즈 페스티벌은 크게 두 축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그 한 축은 해외 초청 공연으로 한국 및 유럽 등지에서 초청된 해외 작품을 애버리스트위스 아츠센터 무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올해는 한국의 ‘씨앗이야기(A Seed Story)’를 비롯해 스페인의 ‘트리퓰라(Tripula)’ ‘난민(Refugi)’ ‘피노키오(Pinoccio)’, 프랑스의 ‘탈피(Qui Pousse)’, 벨기에의 ‘한 걸음 더(Un Tout Petit Peu Plus Loin)’ 등 총 일곱 작품이 공연됐다. 마임과 그림자극, 피지컬 시어터, 오브제를 활동한 놀이, 슬랩스틱코미디, 판소리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된 작품들은 3~4세의 어린 관객부터 고령의 노인 관객까지 연령과 상관없이 즐길 수 있었고, 모두가 이른 봄에 찾아온 문화예술의 향연 속에서 행복해했다.


그리고 현지 예술가와 지역 내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웨일스 작품들이 나머지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자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을 활용한 참여형 공연 ‘슬립 스톤즈(Slip Stones)’,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는 청소년의 외모지상주의와 미디어의 폐해를 지적한 ‘뷰티 인 더 긱(Beauty in the Geek)’, 타국에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난민 이야기를 그린 ‘피자 숍 히어로즈(Pizza Shop Heroes)’, 4인조 재즈밴드에 맞춰 시를 읽고 노래하는 ‘강물이 전하기를(The River Says)’, ‘소통’이라는 주제를 학생들과 워크숍 형태로 풀어낸 ‘속삭임(Mur Mur)’ 등 어린이·청소년뿐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문제를 예술의 언어로 풀어낸 점이 흥미로웠다. 또한 유치원과 학교 내 교실과 강당 무대에 올린 ‘놀이(Chwarae)’ ‘이것이 그 단검인가?(Is This a Dagger)’ ‘단과 딕(Twrw Dan a Dicw)’ ‘트랜스포터(Transportor)’ ‘가까이 그리고 멀리(Near and Far)’ 등의 학교 공연은 연령별 발달 과정을 반영한 참여형 공연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 축제에서는 국제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이자 문화적·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난민’에 대한 이야기가 축제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했다. 현재의 불편하고 어려운 문제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공연예술의 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해외 참가작들은 세계 각국의 아동·청소년 예술 축제에 자주 초청돼 이미 그 작품성이 검증된 ‘완성형’ 작품인 데 반해, 웨일스 작품들은 ‘현재 진행형’의 가능성을 지닌 작품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문화예술, 전통 언어에 뿌리내리다

이 축제를 처음 접하는 방문객으로 놀라웠던 점은 영국에 있으면서도 영국에 있음을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영어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웠다는 것이다. 다만, 웨일스어가 영어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공연뿐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 행사의 진행 그리고 주변의 안내 표지판과 가이드 북 등 모든 것이 웨일스어로 돼 있어 북유럽 어디쯤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직 실질적으로는 영어가 더 많이 사용되지만, 웨일스 정부는 웨일스어 교육과 상용화를 위해 매년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한 찰라 마침 동행 중 웨일스 출신의 기획자가 있어 물어보니, 웨일스에는 전통 무용·음악·공연 양식 등 전통문화라는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토착 언어에 대한 집착은 전통의 말과 글이라도 지켜내야 한다는 웨일스 사람들의 문화적 자존심과 또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파생된 것이라 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극단 아라드 고흐
오프닝 도어즈 페스티벌이 현재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기까지에도 지역 문화 단체의 도움이 있었다. 그 중심에는 지역의 터줏대감인 ‘크므니 씨어트르 아라드 고흐(Cwmni Theatr Arad Goch)’(이하 극단 아라드 고흐)가 있다. 극단 아라드 고흐는 시내 중심에 다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블랙박스 시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어린이·청소년과 관련한 공연 및 워크숍 등을 기획 및 제작한다. 오프닝 도어즈 페스티벌의 최초 기획자이자 연출가,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 극단 예술감독 제러미 터너(Jeremy Turner)는 1989년 극단 설립과 함께 아동·청소년을 위한 신나고 혁신적인 연극 제작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아시테지 세계본부 이사로 활동하던 그는 자신의 국제 네트워크와 지역 내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연 분야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활용해 오프닝 도어즈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이후 배우이자 어린이 동화 작가인 배우자 마리 터너와 함께 전 세계 어린이·청소년 작품 유치는 물론 지역 내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개발했다. 이뿐 아니라 예술가 양성을 위해 축제를 극단 아라드 고흐의 가장 큰 사업으로 확장했으며 웨일스 문화부와 영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현재에 이르게 됐다.


극단 아라드 고흐는 아이들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며 기억에 남는 연극적 경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다양한 창의력 학습 프로젝트와 주간 공연 클럽 등 어린이·청소년과 많은 작업을 하고 있다. 특별히 이번 축제는 극단 창단 30주년을 기념해 더욱 다양한 작품과 부대 행사를 마련, 해외 관계자들과 돈독한 네트워킹 구축을 위해 힘을 쏟았다.

이번 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인 극단 아라드 고흐의 ‘슬립 스톤즈’는 제27회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에 참가, ‘돌돌돌, 슬립 스톤즈’란 이름으로 국내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이 작품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돌’을 소재로 하는 참여형 공연이다. 어린이들은 출연 배우를 도와 새로운 집을 꾸밀 물건을 야외에서 같이 찾기 시작한다. 돌을 찾은 어린이들은 배우와 함께 새집이 될 공간, 공연장으로 들어가 또 다른 배우를 만난다. 두 배우는 어린이 관객의 도움을 받아 같이 나누고 노는 방법을 배우고, 아름답게 새집을 꾸민다. 약 50분간 진행되는 공연은 우정·실망·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고 창의력을 발휘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아이들이 자유로운 놀이의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텔레비전이나 휴대폰, 게임기와 같은 디지털 기기가 놀이의 중심이 된 요즈음, 어린이들에게 자연 속 오브제를 소재로 본능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뛰어놀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은 중요하다. 돌의 질감·무게·모양·색깔, 그리고 돌로 만드는 소리는 어린이들의 촉각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상상력을 유연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하며, 개념과 말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한 공부다. 공연을 통해 자연을 경험한 아이들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흔한 돌멩이 하나의 의미도 새롭게 느끼지 않을까.


김혜영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 본부 전문위원. 전 국립극장 기획위원으로 네 살 된 딸에게 주는 선물 같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다시 공연계로 돌아온 ‘엄마 공연기획자’.


사진 제공 극단 아라드 고흐(Cwmni Theatr Arad G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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