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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호 Vol.350

새 시대 창극의 시학을 고민하다

리뷰┃국립창극단 신창극시리즈3 '시'

기존 창극의 관습과 규범을 흔들며 오늘날 ‘창극의 시학’을 새롭게 정립해 나가는 신창극시리즈가

세 번째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창극의 무엇을 더 상상할 수 있을까.
2019년 1월 18~26일 | 국립극장 하늘극장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극·서사시 등과 같은 극 장르가 지닌 형태적 특성이 무엇인지를 다루면서, 특정 장르가 어떤 요소로 어떻게 구성되는지 설명한 것이다. 시의 구성을 하나의 일정한 형태로 보는 이러한 관점은 극 이론의 초석이 됐다. 이러한 ‘시학’의 논리는 계속해서 재해석되고 확장되면서, 이제는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특정 장르에 대한 형식적 규범만을 뜻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패러다임을 생산해내는 원천이 됐다. 오늘날 우리는 판소리·소설·정치·역사 등 다양한 담론 전반에서 일반적인 특성을 해명하기 위해 활용되는 시학의 예를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가 있다.

 


1월 18일부터 26일까지 하늘극장 무대에 오른 국립창극단의 신창극시리즈3 ‘시(詩·Poetry)’는 시를 바탕으로 ‘창극의 시학’을 고민한 작품이다. 여기서 ‘창극이 지닌 형태적 특성은 무엇인가, 창극이라는 장르는 어떠한 규범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드러났다. 본디 창극이라는 장르는 전통 판소리를 새롭게 변용한 작품군을 지칭한다. 여기에 다시 새로울 ‘신(新)’ 자를 붙여서 ‘신창극’이라고 무언가를 명명한다면, 그것에는 이미 변용된 전통을 또다시 변용하겠다는 의지가 더해진다. 따라서 ‘신+창극’이라는 명명은 기존의 창극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며, 기존의 것과 대비해 어떤 ‘새로운’ 특성이 창극 안에 포섭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필연적으로 전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기획 속에서 작품의 주제로 과감하게 선택한 것이 바로 ‘시’이니, 자연스럽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전복성과 도전성에 많은 사람의 기대와 이목이 집중됐다. 그리고 그 기대만큼이나 과감한 도전을 통해 과연 창극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날 창극의 장르적 경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지며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창극이라는 장르적 규범, 그 경계를 흔들다
밤새 한바탕 파티를 벌이고 떠난 흔적만이 남은 공허한 방. 네 명의 배우들은 그 방에 들어오고 나가면서 각자 또는 함께 노래하거나 이야기한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거나 읊는 언어는 모두 칠레의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재구성한 것이다. ‘시’ ‘충만한 힘’ ‘물’ ‘세레나데’ ‘청춘’ ‘젊음’ ‘개가 죽었다’ ‘돌아온 방랑자’ 등이 두 명의 소리꾼과 두 명의 배우를 통해 새롭게 음미된다. 이를 지켜보는 일은 마치 그들과 함께 파블로 네루다 시집을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시를 읽어나가는 것 같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어떤 극적인 순간들이 무대 위 네 사람의 입을 통해 파편적으로 전달된다. 여기서 ‘파편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작품에 극 전체를 강력하게 관통하는 서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창극 작품에는 예컨대 ‘형제 이야기’(흥보가) ‘사랑 이야기’(춘향가) ‘전쟁 이야기’(적벽가)와 같이 극을 이끌어나가는 하나의 중심 사건 또는 서사가 존재해왔다. 그러나 창극 ‘시詩·Poetry’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서사라기보다는 차라리 서정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 이 부분이 이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창극을 감상할 때, 작은 서사 단위인 에피소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는 어떤 사건의 씨앗이 결말의 발단이 되는지 파악하는 데 관습적으로 많은 노력을 할애해왔다. 그러나 ‘시(詩·Poetry)’에서 관객이 집중하게 되는 것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 조각들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배우들이 몸과 입으로 빚어낸 팔딱거리는 시어가 감정을 전달하는 순간 그 자체였다. 이렇게 ‘시(詩·Poetry)’는 창극이라는 장르의 규범을 서사와 서정의 경계에서 한바탕 뒤흔들어놓고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무대 위에 선 인물들이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도 이 작품이 던져놓은 재미있는 수수께끼였다. 연출을 맡은 박지혜는 「미르」와 인터뷰하면서(2019년 2월호), ‘보통의 창극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는 그 줄거리 위에 있다 보니 창작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고민을 밝혔다. 그녀는 이러한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서사 형태를 찾고 있었고, 창극을 하는 배우 역시 좀 더 다양한 모습이기를 바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앞서 짚었듯 ‘시(詩·Poetry)’는 처음과 끝이 있는 완성된 형태의 서사를 토대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종욱·양조아라는 두 명의 배우와 유태평양·장서윤이라는 두 명의 소리꾼 역시 극 중 특정 배역을 연기한다기보다 마치 무대 위에서 그들 본래의 모습으로서 존재하는 듯했다. 각자에게 주어진 콘셉트 의상은 극 중 캐릭터의 본질을 상징하는지, 시를 발화하는 배우 개인의 개성에 더 가까운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때로는 인형탈·가발·선글라스 등의 소품을 쓰거나 벗으며 등장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품의 변화에 따라 그것이 다른 이름을 가진 작중 인물로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들 네 사람은 작품의 퍼포머인 동시에 창작자이기도 했다. 이들은 2018년 8월부터 공동창작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함께 시를 읽고 교감하며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두 명의 소리꾼은 이자람과 협업해 작창을 했고, 배우 둘은 주어진 대본 없이 개인이 감각한 방식대로 시를 표현하면서 워크숍을 이끌었다. 네 명의 퍼포머가 모여 각자가 선택한 문장을 반복해서 읽기도 하고, 다른 시의 구절과 섞기도 하면서 공연을 만들었다. 양조아?양종욱?유태평양?장서윤, 이들 네 배우는 창극 ‘시(詩·Poetry)’의 퍼포머이기 이전에 파블로 네루다 시의 가장 충실한 독자이기도 했다. 작중 인물로서의 캐릭터와 배우 그 자신, 그리고 창작자와 퍼포머의 경계에 선 네 사람의 존재로 인해 ‘시(詩·Poetry)’는 기존 창극의 장르적 관습을 해체시키는 또 다른 지점이 된다.

 

우리 전통과 맞닿은 이국의 시
강렬한 전자음에 실린 배우의 육성, 빛과 그림자 속에서 어른거리는 그들의 땀과 호흡. ‘시(詩·Poetry)’의 무대가 펼쳐내는 다양한 감각의 교차점 속에서 관객으로서 함께 몰입하면서도, 중간 중간 극으로부터 빠져나올 때마다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창극인가,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작품이 ‘창극’이라고 인식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작품이 질료로 삼고 있는 소리의 성질이 우리 전통으로부터 이어져 왔다는 점이다. 운율이 잘 살아 있는 시어와 유희성이 잘 살아 있는 판소리의 연희어는 그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공들여 번역된 이국의 시어들이 우리의 맥박과도 같은 장단과 구성진 가락 속에 자리 잡게 되면, 그것을 감각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이것이 낯선 시로서 감각된다기보다는 ‘우리 소리’로서 먼저 인지된다.


한편 탄생·사랑·이별·죽음에 대한 각각의 노래와 이야기는 전통 판소리에서 우리가 ‘장면의 극대화’라고 일컫는 대목의 구성 방식과도 매우 흡사하다. 판소리 ‘춘향가’를 예로 들면, 창자는 춘향이 이도령을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또 만나는 사건만을 단순 진술하는 것이 아니다. 춘향이 사또 앞에 끌려가 매질을 당하고 옥방에 갇힌 장면에는 춘향이 품은 일편단심의 마음, 임에 대한 그리움, 뼈에 사무치는 억울함과 슬픔 등과 같은 정서가 노래를 통해 전달된다. 창극 ‘시(詩·Poetry)’에서 시에 드러난 심상을 전달하는 방식이, 서사의 흐름 속에서도 각 부분의 심상이 극대화된 채 향유되는 판소리의 구성 방식과 오버랩된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참신한 시도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상상하게 되는 창극의 미래에서 다시 전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동화 ‘빨간 망토’를 재해석한 ‘소녀가’, SF소설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각색한 ‘우주소리’에 이어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차용한 ‘시(詩·Poetry)’까지. 국립창극단의 신창극시리즈는 창극의 관습과 규범을 흔들면서 오늘날 ‘창극의 시학’을 새롭게 정립해 나가고 있다. 그 속에서 과거와 미래가, 전통과 현대가, 서사와 서정이, 그리고 머나먼 이국의 언어가 이 땅의 소리와 만나며 하나의 작품으로 생명력을 얻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공간을 꿰뚫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새해에도 국립창극단의 의미 있는 도전이 계속되길 바라는 이유다.

 

이채은 ‘현재’의 삶을 바꾸는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 읽고 쓴다. 서강대학교에서 판소리계 소설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문학과 예술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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