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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호 Vol.350

소리와극, 창극과 경극의 만남

프리뷰3-1┃국립창극단 '패왕별희'-우싱궈와 이자람

경극의 현대화에 앞장서온 우싱궈와 판소리로 동시대 관객과 소통해온 이자람이 만났다.

경극을 품은 창극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마주할 수 있을까.

 

초패왕 항우와 우희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경극 ‘패왕별희(覇王別姬)’가 창극으로 태어난다. 각각 경극과 창극을 현대화하는 작업에 앞장서온 우싱궈(吳興國)와 이자람이 ‘패왕별희’의 창극화 작업을 진두지휘한다. 대만 당대전기극장의 대표이자 연출가 우싱궈가 경극의 특성을 담아 외형을 만들어간다면, 작품 내면에 흐르는 소리는 대표적인 소리꾼이자 창작자인 이자람이 맡는다.

 

 


우싱궈와 이자람은 전통예술의 현대화 작업을 꾸준히 시도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싱궈 연출은 ‘리어왕’ ‘템페스트’ ‘고도를 기다리며’ 등 서양 고전을 경극 양식으로 풀어낸 작업으로 주목받았는데, 여러 차례 내한 공연을 한 바 있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이다. 이자람은 소리꾼이자 창작자로서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억척가’ ‘사천가’ 등을 창극으로 선보였고, 2018년에는 신창극시리즈의 첫 주자로 ‘소녀가’를 만들기도 했다. 둘 다 전통 장르를 현대화해온 예술가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우싱궈가 고전을 경극 양식으로 풀어낸 작업을 주로 해왔다면, 이자람은 동시대 관객과의 만남에 더 관심이 있는 창작자다.


우싱궈는 “전통적인 요소가 침전물처럼 쌓이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경극이라는 핵심 양식으로 새로운 작품과 만나는 작업을 설명한다. 반면 이자람은 “판소리의 대중화에 사명감을 갖지 않아요. 오히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나에게 흥미를 주고 자극하는 것에 집중해서 작업해요. 단지 내가 가장 잘 아는 도구가 판소리일 뿐”이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강조한다. 전통을 현대화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열려 있다는 면에서 둘의 작업은 다르지 않다. 창극 ‘패왕별희’에서 이들의 상징적인 움직임과 서사적인 소리가 만난다.

 

창극 ‘패왕별희’에서만 볼 수 있는 어떤 것
우싱궈는 창극 ‘홍보씨’와 ‘트로이의 여인들’을 봤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코믹한 느낌도 있고, 한편으로는 서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소리에 굉장히 힘이 있어 웅장한 서사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섬세하기도 해서 로맨스를 표현하기에도 좋다는 생각에 ‘패왕별희’를 선택했습니다. 판소리는 인류의 아픔과 비극을 노래하기에 적합한 예술이에요”라며 판소리에 대한 느낌을 전했다.


창극 ‘패왕별희’는 소재도 그렇거니와 50여 년간 경극을 연기하고 만들어온 우싱궈가 참여한 만큼 경극 양식을 흡수한 창극이 될 것이다. 가장 궁금한 지점은 경극과 창극이 어떤 방식으로 만나게 될지다.


“경극은 부르고(唱) 읊고(念) 동작으로 표현하고(作) 무술 하는(打)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창극과 경극의 표현법에는 차이가 있죠. 창극은 목소리로 많은 것을 표현하는 만큼 추상적이지만, 경극은 시각적이면서 매우 구체적이에요. 경극에는 무대 장치가 없어요. 소품도 의자나 책상 하나 정도예요. 경극에는 손끝 하나로 온 세상을 표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배우의 제스처나 걸음걸이 같은 동작 하나하나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녀요. 판소리는 내적인 묘사가 가능한 장르이기 때문에 경극의 특징을 잘 결합해서 표현하는 게 목표입니다.”

 

우싱궈는 동작이나 움직임 등 외적인 부분은 경극의 요소를 차용하고 소리를 비롯한 내적인 요소는 창극에서 가져와 기존의 전통 경극이나 창극과는 다른 새로운 양식을 실험하려 한다.
그래서 소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음악감독과 작창을 겸하는 이자람은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경극이란 장르가 가진 무게감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고 했다.


“경극이라는 거대한 문화로 항해를 떠난 느낌이에요. 우싱궈 연출이 겪은 경극의 역사와 국립창극단 배우들의 창극의 역사가 만나는 작품이잖아요. ‘만남’이기 때문에 제가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밸런스’예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로 소리를 붙잡고 있어야 할지 고민이에요. 국립창극단과 여러 작품을 같이 해왔지만 가장 부담이 큰 작품이기도 해요.”


이번 작품은 웅장한 전쟁 장면도 있고, 애틋한 이별 장면도 있어서 창극 ‘적벽가’나 ‘춘향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자람은 기본적으로 ‘적벽가’를 레퍼런스로 삼고 있지만 대본이 주는 인상이나 느낌을 우선으로 작창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창극 ‘패왕별희’의 음악적 특징이라면 경극의 움직임이나 어법을 담아내야 한다는 데 있다.

 

“창극에는 없는 경극만의 어법이 있어요. 예를 들면, 어떤 동작을 할 때 배우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배우와 연주자가 함께 호흡하며 작은 손동작 하나까지 음악으로 동시에 표현하는 거죠.(이자람은 경극에서 볼법한 손동작을 해 보이며 설명했다.) 경극 배우의 몸짓과 해석이 우리 악사와 만나 이 프로덕션에서만 가능한 음악이 나올 거예요. 슬픔에 대한 정서나 표현도 우리와 다른 면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만드는 음악을 같은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될지, 다르다면 무엇이 발생하게 될지 기대돼요. 내일 배우들의 움직임을 보러 가거든요. 배우의 움직임을 보고 느끼면서 음악을 만들면 또 달라질 것 같아요.”


이자람은 걱정되고 부담이 된다고 했지만 우싱궈는 그녀가 이미 창극의 경험으로 경극에 입문했다며 단단한 믿음을 보여주었다.

 

 

 

‘항우’ 죽어서도 영웅이어라
경극 ‘패왕별희’는 유방에게 쫓겨 해하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이르게 되자 결국은 전장을 따라다니며 고락을 같이한 우희가 자결하고, 항우도 후일을 도모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는 대목까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창극에서는 연희에서 유방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대인배다운 성품 때문에 기회를 놓치게 되는 ‘홍문연(鴻門宴)’ 장면과 항우의 장수였으나 유방에게 옮겨가 실질적으로 항우가 패배하게 만드는 한신의 이야기를 추가했다.


“‘패왕별희’가 한국에서는 생과 사의 이별을 그리는 대목으로 더 알려진 것 같은데 그 장면이 왜 애틋하고 로맨틱한지 중국의 역사와 유방과 항우의 전사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항우가 위기에 처하는 ‘십면매복(十面埋伏’)과 ‘홍문연’을 넣었습니다. 창극 ‘패왕별희’는 ‘홍문연’과 ‘패왕별희’ 장면에 중점을 두어서 전개됩니다.”

‘패왕별희’는 항우의 영웅성이나 우희와의 애틋한 사랑 중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싱궈는 이 작품의 방점은 항우에게 있다고 말한다. 항우는 전쟁의 신으로 여겨질 정도로 전쟁에서 져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해하에서 다수의 한나라 군사가 그를 쫓았으나 잡지 못했고 오히려 항우의 칼날에 병사들이 쓰러져갔다. 결국 항우는 한나라 군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결해 무너졌다. 결과적으로 항우는 실패한 인물이다. 중국의 옛말에 ‘실패한 사람은 끝까지 실패한 사람이고, 이긴 자만이 영웅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마천은 ‘사기’에서 그를 제왕 편에 수록하면서 영웅으로 받든다. 우싱궈는 그 이유에 대해 “항우는 성품이 올곧고 정직한 사람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유방을 죽일 수 있었는데 놓치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는데 죽음을 선택하거든요. 그런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승패에 상관없이 그를 영웅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창극 ‘패왕별희’는 원작 경극에 비해 유방과 항우의 관계나 역사적인 장면을 추가해 좀 더 입체적으로 극화할 뿐만 아니라 맹인 노파를 등장시켜 전쟁의 허망함을 느끼게도 한다. 맹인 노파는 창극의 도창과 같은 역할로 극의 외부에서 상황을 논평한다.


“맹인 노파를 여성이라기보다는 인류의 본성으로 봐주면 좋겠어요. 이 인물은 전쟁의 비극이나 허무감을 보여주기도 하죠. 굳이 맹인으로 설정한 이유는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아닌 마음이나 영혼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맹인 노파는 작품 곳곳에 등장해 항우의 영웅성이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안타까움을 노래로 위로한다.
창극 ‘패왕별희’는 창극과 경극의 만남임과 동시에, 한국과 중국의 전통예술이 현대 관객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자람은 이 작품이 지금의 관객들에게 잘 만들어진 고전 한 편을 맛있게 즐기는 경험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우싱궈는 “매란방이란 남자 배우가 여성을 잘 표현해 세계적으로 경극을 알렸는데 이번 작품에서 매란방만큼이나 훌륭하게 우희를 연기할 남성 배우를 찾아 기쁘다”는 말과 함께 이 작품을 계기로 중국 역사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 국립창극단 배우들에게도 새로운 예술적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그의 말처럼 창극 ‘패왕별희’는 창극과 경극이라는 두 개의 장르가 만나 하나의 새로운 예술 양식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경극과 창극, 전통과 현대가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할 창극 ‘패왕별희’와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박병성 ‘뮤지컬 탐독’ 저자. ‘더뮤지컬’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역임하고 공연 전반을 넘나들며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 매체 환경 변화에 맞는 비평에 대해 고민 중이다.

 

국립창극단 ‘패왕별희’
날짜     2019년 4월 5~14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관람료  R석 5만 원, S석 3만 5천 원, A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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