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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호 Vol.350

아리랑 로드로 향하는 상상과 짐작의 지렛대

SPECIAL┃공연 미리보기

특유의 유연한 음악으로 국악의 변신을 이끌었던 양방언이 디아스포라를 등에 업고 아리랑 로드로 진입한다.

그가 국립국악관현악단과 만들어갈 새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양방언이 작곡한 ‘프런티어(Frontier)’(2001)는 국악관현악 공연의 막을 열거나, 환호와 함께 막을 내릴 때 자주 연주된다. 하지만 이 곡은 애초에 국악관현악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밴드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국악관현악 버전으로 편곡돼 ‘애창곡’으로 자리 잡았다. 양방언은 이러한 풍경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 세 번째 무대인 이번 공연은 양방언의 작품으로만 꾸며진다. 특히나 그의 곡들이 국악관현악 버전으로만 꾸려진 ‘최초’의 무대라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1부는 신작 ‘아리랑 로드’, 2부는 그의 대표작 여섯 곡이 관현악의 옷을 입고 오른다. 지휘는 부산시립교향악단 예술 감독으로 재직 중인 최수열이 맡았다. 최수열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리컴포즈’(2015), ‘2016 상주작곡가: 김성국·정일련’(2016) 등 갓 지어낸 따끈한 국악관현악곡들을 안정된 초연으로 이끈 지휘자다.

 

 

관현악이라는 옷을 입히기 위해 치수를 재다
양방언 음악의 특징 중 하나를 꼽으라면 유연성이다. 곡마다 악기 선정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피아노(때로는 아코디언)를 중심으로 하되, 멜로디는 태어날 적부터 어떤 특정 악기를 염두에 두지만, 이러한 선율과 악기들이 모인 음악은 묘하게도 ‘열린 구조’를 지향한다. 그래서 몽골의 전통 성악이 처리한 어느 선율을 후에 남성 소리꾼이 불러도 그 특유의 민속적 감각이 돋보인다. 때로는 얼후의 자리를 해금이 차지해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간 공연장에서 만난 그의 무대가 매번 새롭게 다가온 이유는 ‘작곡’에 있다기보다는, 이 같은 ‘유연성’에 입각한 악기 바꾸기와 새로운 소리 찾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공연은 양방언의 의문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2014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은 태어나는 순간 자신을 떠나 세상을 돈다”고 말했지만 ‘프런티어’가 생각지 못한, 관현악으로 변신하고 유행하는 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음악이 국악관현악으로 표현된다면 어떠할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간의 작품들이 보여준 ‘열린 구조’를 가늠해 관현악단의 국악기들이 들어설 수 있는 면적을 계산해봤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부지휘자를 지내고 현재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인 작곡가 계성원이 이를 도왔다.

 

 

양방언을 따라 ‘아리랑 로드’를 걷는 1부의 무대
1부에는 ‘아리랑 로드’가 무대에 펼쳐진다. 국악관현악곡들은 단일 악장인 경우가 많은데, 25분에 달하는 이 곡은 여섯 부분으로 나눠 진행된다. 여섯 얼개를 엮는 메인 테마는 ‘디아스포라’다. ‘디아스포라’란 조국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는 가운데도 유대교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후에 그 의미가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아리랑 로드’의 순서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 민족의 수난사와도 같다. ①도입부의 메인 테마(디아스포라)와 제시부 ②그들이 떠날 수밖에 없게 한 시대의 ‘선고(宣告)’ ③시베리아 횡단 철도 ④아리랑 하모니(아리랑의 이상향) ⑤잃어버린 아리랑 ⑥양방언의 기존 음악인 ‘아리엔느의 실’과 아리랑 주제의 만남 ⑦메인 테마(앞의 ①)의 변주를 동반한 재연 순이다.

 

‘디아스포라’는 3월에 방영될 KBS 3·1운동 10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아리랑 로드’의 메인 테마곡이기도 하다. 양방언은 이 작품을 위해 고려인이 이주한 경로를 체험하며 영감을 받았다. 전해 내려오는 선율은 없어졌지만 가사만 남은 고려인들의 아리랑에 선율을 붙이기도 했다.

 

‘Into the Light’에서 ‘아리랑 로드’까지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은 ‘아리랑 로드’의 상상과 짐작의 지렛대로 1998년과 2002년에 각각 일본과 한국에서 발매된 2집 앨범 ‘Into the Light’를 회자하는 것도 좋겠다. 이 앨범을 통해 그는 자신의 음악이 밴드의 앙상블을 넘어 관현악곡으로 확장하는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수록곡의 연주는 로빈 스미스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수록곡들을 관통하는 특징 중 하나는 특정 악기와 관현악이 함께하는 부피가 큰 작업이지만, 실제로 그의 음악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특정 악기를 다루는 메인 아티스트나 악기의 색채 등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것을 보충하는 최소한의 필요 요소, 하지만 최대 효과를 지닌 악기 라인을 관현악에 위임하는 식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최소를 지향한 관현악의 소리는 음악 안에서 오히려 한결 돋보이고 빛을 발한다.


그는 이 앨범을 제작하면서, 홍콩과 일본을 잇는 아시아권에 주로 머물던 그의 시야와 관심사가 확장됐다고 한다. 켈트 음악과 실크로드 음악은 물론 중세 이전의 음악을 총칭하는 고古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중동의 독특한 음계나 음정 등을 자유분방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만돌린·백파이프·리코더·아이리시 덜시머·얼후 등 다양한 민속악기의 음색도 사용한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경험이지만, 이번 무대는 그 당시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한다. 그래서 공연명도 이 앨범의 이름과 같다. 한마디로 이번 무대는 그때의 관현악 경험을 토대로 한 ‘국악관현악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동서양의 감수성과 관현악이 만나는 2부의 무대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오키 진(沖仁)의 독주로 막을 연 2부 무대는 ‘아리랑’ ‘야상월우’ ‘바람의 약속’ ‘Kitty’s First Step’ ‘Black Pearl’ ‘Flowers of K’가 이어지는 시간이다. ‘Flower of K’는 1부에서 선보인 메인 테마 ‘디아스포라’와 연결되는 형식을 취한다. 양방언의 이름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된 계기는 그의 음악이 녹아든 MBC 드라마 ‘상도’(2001), NHK BS 애니메이션 ‘십이국기(十二國記)’(2002), KBS 스페셜 ‘도자기’(2004) 등에 의해서다. 동서 문명을 오고간 도자기의 역사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의 오프닝에서 동서양 남녀노소의 표정과 사운드를 혼합한 영상이 흐르는데 양방언의 음악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드라마 ‘상도’에는 약간의 반전이 있다.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오프닝에 흘러나오는 남성의 소리는 몽골 민요인 ‘오르팅 도(уртын дуу)’의 소리다. 조선과 몽골이 묘하게 선 잇기를 하는 것이다.

 

하나의 주제가 중심을 잡는 1부와 달리 2부에선 양방언의 다양한 음악 언어를 만나볼 수 있다. 오늘날 아시아 월드뮤직의 한 언어가 되어버린 ‘양방언어(語) 사전’의 한 장이 펼쳐지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양방언의 피아노와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양쪽의 기둥으로 삼고 그동안 양방언과 호흡을 맞춰온 여러 음악가가 함께하기도 한다.


플라멩코 기타·타악과 함께하는 ‘아리랑’이 자신의 문화적 뿌리에 대한 음악적 고백이라면, 지아 펭 팡(Jia Peng Fang)의 얼후와 함께하는 ‘야상월우’는 한동안 매진했던 중화권의 동아시아 감수성을 들려준다.
얼후와 함께하는 ‘바람의 약속’에선 광활한 몽골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지고, 온라인게임 ‘아스타’의 삽입곡으로 화제가 된 ‘Kitty’s First Step’은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아시아적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Flowers of K’는 2004년에 발매한 다섯 번째 앨범 ‘ECHOES’의 머리 곡으로 밝은 선율과 태평소 가락이 인상적이다. ‘K’는 한국을, ‘Flowers’는 따뜻하면서도 힘 있는 한국의 여성을 비유한다.


필자의 기억으로 그의 ‘프런티어’가 국악관현악으로 연주되고 난 이후 경향(京鄕) 각지의 악단들이 너도나도 이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공연은 전국에 불어올 ‘양방언표 관현악 열풍’의 기원이자, 앞서 말한 ‘양방언어 사전’ 중 국악관현악 장의 한 장을 들춰보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송현민 음악평론가. 음악을 듣고 글을 쓰며 부지런히 객석과 책상을 오가고 있다. 급변하는 음악 생태계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 미래를 ‘기획’하는 자료가 된다는 믿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관현악시리즈III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Into The Light’
날짜     2019년 3월 21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관람료  R석 5만 원, S석 3만 원, A석 2만 원
문의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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