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르와도 호환할 수 있는 폭넓은 음악으로 대중과 소통해온 그가 국악관현악에 첫발을 내디뎠다.
양방언의 이름이 국악계를 ‘거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1년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이 기점이었다고 기억한다. 영화 ‘서편제’의 속편 격인 영화 ‘천년학’(2007)의 음악을 맡았던 터라 그전부터 국악계에서 언급되곤 했지만 당시 그의 이름은 애니메이션?게임?다큐멘터리?광고 등에서 접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고 익숙했다. 그런 그가 2011년 7월 여우락 페스티벌의 개막 공연에서 자신의 대표곡인 ‘천년학’의 사운드트랙과 ‘프린스 오브 제주’를, 국악기를 더 많이 편성해 연주했다.
이후 2012년 여우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이듬해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소나무 사진의 대가 배병우와 함께 개막 공연 ‘동양의 풍경’(2013) 무대에 올랐다. 세 사람의 분야는 각기 달랐다. 하지만 이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작품 세계가 동양의 정서에 뿌리내리고 있다”(2013년 6월호 월간 「미르」)는 공통점과 이를 살린 여우락의 기획력 때문이었다. 양방언은 게임 ‘아스타’의 테마, ‘류운의 파반느~애가’ ‘프린스 오브 제주’ 등을 선보였다. 그 곡들은 ‘국악’이나 ‘전통음악’이라기보다는 뉴에이지풍의 성격이 짙고 전달력이 강한 멜로디 라인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도 국악기가 부분적으로 배치되어 멜로디와 그 속의 감성을 잘 살려냈다.
흔히 뉴에이지나 월드뮤직으로 분류되는 양방언의 음악은 기획과 연주 상황에 따라 국악기와 같은 전통악기로 연주되곤 한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도 양방언 특유의 오리지널리티가 손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영화?광고?게임 같은 영상 산업에 적극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도 갖췄다. 그래서인지 관객이 재미를 느끼게 하는 전략도 비교적 뚜렷하다. 익히 알고 있는 양방언 사운드를 국악기와 같은 새롭고 낯선 악기로 접하는 것. 2014년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대중의 인기를 끈 ‘여우락 판타지’ 공연 또한 그러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전략
사실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호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여우락 페스티벌의 ‘조율’ 공연에서 첫 호흡을 맞췄다. 당시 예술감독이던 원일의 지휘로 진행된 이 공연에는 양방언이 작곡하고, 원일과 계성원이 편곡한 드라마 ‘상도’의 오프닝 테마 ‘Too Far Away’, 일본 애니메이션 ‘십이국기’ 중 ‘야상월우’, 영화 ‘천년학’ 중 ‘비상’ ‘St Bohemian’s Dance’ ‘Mint academy’ 등이 연주됐다. 애초 국악기가 아니라 아시아 전통 악기를 섞어 작곡한 곡들이지만, 국악관현악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자연스러움을 느낀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2019년의 무대는 어떠할까. 양방언은 작년 8월부터 내한할 일이 있을 때마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의 워크숍을 통해 악단 고유의 연주 시스템?색채?특징 등을 파악했다. 또한 2014년에 바이올린?첼로 등의 서양악기가 비교적 많이 편성되어 양방언 특유의 ‘뉴에이지적 배경음’을 연출했다면, 이번에는 개량 국악기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 국악적 사운드 색채를 올곧게 가져간다는 점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런데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지금까지 취해온 행보와 그 맥락을 볼 때 ‘양방언’이라는 선택은 좀 독특하다고 할 수 있겠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처럼, 특정 예술가를 내세운 공연을 시의적절하게 진행해왔다. 하나의 무대에 다종다양한 선곡과 볼거리로 가득 채우던 과거와 달리, 특정 예술가를 점찍어 그의 음악적?예술적 업적과 성과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그와 함께하며 쌓은 에너지를 악단의 저력으로 저장하는 방식이다. 비교적 많은 변화가 일었던 2010년 초반부터 살펴보면 ‘만수산 드렁칡’의 이건용(2012), ‘소리연緣’의 박범훈(2013), 작곡가 시리즈의 이해식?강준일?김영동(2014) 등의 작곡가들이 여기에 속하고, ‘임헌정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이끌었던 지휘자 임헌정(2015)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을 내세운 무대는 오늘날의 국악관현악을 이루는 뿌리와 중심을 들여다보는 작업이기도 해 아카데믹한 분위기를 띠었다.
‘또 다른 사람’이 희망이라는 전략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Into The Light’도 위와 같은 연장선상이되, 남다른 점이 더 많은 무대다. 앞서 열거한 작곡가들이 국악계의 중심을 이루는 존재들이라면, 양방언은 국악계라는 장 바깥에서 국악계가 공유하고 싶은 성취와 성과를 이룬 인물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국악을 염두에 두고 작곡하진 않았지만 오늘날의 국악이 공유하고 싶은 동시대적 자원이자, 호환 가능성이 많은 작품들을 국악관현악단의 맥락으로 포섭해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려는 작업인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생소하지 않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극장에서 동거 중인 국립창극단은 2012년경부터 판소리와 상호 호환?교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연출가?극작가?작곡가를 적극 초빙해 새로운 창극을 출산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국립무용단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러한 선택과 실험은 작품은 물론 관객의 성향도 바꿔놓았다. 장외의 선수들이 다종다양하게 참여할수록 이들의 작품을 보러오는 관객의 성향도 이와 닮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국립창극단의 창극을 보는 연극 마니아와 국립무용단의 공연을 즐겨 찾는 패션 마니아들도 생겼다. 앞서 거론한 여우락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이웃의 행보에 비춰볼 때,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이번 선택과 실험은 다소 늦은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을 떠나 이번 공연이 의미 있는 것은 ‘엔터키’가 아닌 ‘시프트키’를 누르는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장내의 거장들과 함께 ‘이것이 국악관현악이다’를 보여 온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이번에는 ‘시프트키’를 눌러 하나의 버튼에 내재된 또 다른 소리글자를 꺼내는 것이다. 그래서 관현악의 기존 문법에 없던 새로운 문장을 써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 송현민 음악평론가. 음악을 듣고 글을 쓰며 부지런히 객석과 책상을 오가고 있다. 급변하는 음악 생태계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 미래를 ‘기획’하는 자료가 된다는 믿음으로 활동하고 있다.